수월스님의 발자취 천장암을 떠나 전북 김제로 향했습니다.
이 번에는 진묵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성모암으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가는 길에 전주에 들러 전주 비빔밥 점심공양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행을 했습니다.
동행한 법선, 법진 스님과 법담을 나누며 진묵스님의 일화를 이야기 했습니다.
특히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님을 모시고 산 이야기... 또 후 손이 없어 제사를 지내드리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에 천년동안 제사를 받을 수 있는 풍수지리가 좋은 명당자리에 어머니 묘소를 만들었다는 지극한 효성이 오늘날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성모암에서 주지스님 묵암스님을 만나뵙고 차담을 나누었고.... 감사하게도 진묵스님 일대기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기회를 보아 책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소원은 이루어진다. 2014-나라교재-편집부)
진묵대사 어머니 제주 고씨의 전각-성모암내 있음 -고시례전
진묵대사(震默大師)와 성모암(聖母庵)
-어머니 은혜에 보답한 진묵대사의 효행 법문-
오늘 진묵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모암에 들러 세상의 모든 어머님을 생각하며 ‘효(孝)’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요즘 세상에는 부모님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들이 노년에는 홀로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머무르십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자식된 도리마저도 시대의 변화 속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께서는 출가한 스님으로서도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끝까지 지킨 분이셨습니다. 오늘은 그분의 이야기를 통해 효도의 참된 뜻을 함께 배우고자 합니다.
*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에서 소원을 말하다.
-소원은 이루어진다.
진묵대사는 출가한 승려로서 후손이 없기 때문에 대대손손 어머니 제사를 모실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효성이 지극한 대사는 생전에 약속한 대로 어머니 유해를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인 만경면 북쪽의 유앙산 기슭에 모셨다.
‘무자손천년향화지지’란 비록 제사를 지내 줄 자손은 없어도 항상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려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묘를 말한다. 진묵스님은 현판에 ‘여기 이 묘는 만경현 불거촌에서 나서 출가사문이 된 진묵 일옥의 어머니를 모셨는 바, 누구든지 풍년을 바라거나 질병 낫기를 바라거든 이 묘를 잘 받들지니라. 만일 정성껏 받든 이가 영험을 모 받았거든 이 진묵이 대신 결초보은 하리라.’ 그로부터 인근 주민들 중에는 인묵대사의 묘에 향화를 받들고 나서 소원을 이루지 못한 이가 없다고 전한다.(『소원은 이루어진다.』, 나라교재 편집부(2014), 224-226쪽.)
성모암 대웅전
# 어머니를 향한 스님의 지극한 마음
진묵대사는 전북 김제 만경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비범한 자질과 자비심을 지녔습니다. 일찍 출가하여 선(禪)과 교(敎)에 모두 밝았지만, 그가 세상에 길이 남긴 것은 법력(法力)보다도 효심(孝心)이었습니다.
출가한 뒤에도 스님은 어머니 조의씨를 절 가까이에 모셔 두고, 하루하루 정성으로 봉양하였습니다. 어느 여름날, 어머니가 모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자 스님은 산신령에게 청하여 그 일대의 모기를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김제 만경면의 성모암(聖母庵) 일대에는 모기가 드물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효성의 기운이 천지자연을 감동시킨 것이지요.
# 효심이 법력이 되고, 법력이 자비가 되다
진묵스님의 어머니가 생을 마치시자, 스님은 유앙산 북쪽에 묘를 써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문을 지어 이렇게 울먹였습니다.
“태중의 열 달 은혜를 어찌 다 갚으리이까.
슬하에서 삼 년 길러주신 정을 어찌 잊으리이까.
만세를 산다 한들 자식의 마음은 아직 부족하니,
어머니의 백년 수명도 어찌 그리 짧으신가.”
이 글에는 출가 수행자라 해도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는 자식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스님은 이어 “이 묘를 쓸고 제사지내는 이는 복과 이익을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후 주민들이 묘를 돌보며 복을 받았다고 전하며, 그 자리에 어머니를 모신 성모암(聖母庵)이 세워졌습니다. 세상에 드문 ‘어머니 사당’이 불교 도량 안에 세워진 것입니다.
# 불효의 시대에 배우는 참된 효
효(孝)는 세속의 도리만이 아닙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곧 부처님을 공양하는 마음이며, 어버이의 은혜를 헤아리는 행이 곧 보살의 자비행입니다. 진묵대사는 출가자로서 부모를 직접 모시는 대신, 마음으로 모시고 행으로 보답했습니다. 그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켜 산의 정령도 움직였고, 그 행이 불법(佛法)을 빛내어 중생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진묵대사의 효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한마디, 손잡아 드리는 한순간이 바로 수행이며 공양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도다.”
만일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난 법우님들은 부모님의 왕생극락을 지심으로 발원하는 천도기도를
하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아미타불” 염불을 일념으로 하여, 업장도 소멸하고 부모님이 안락국에 태어나시길 발원하고 기도합시다.
그렇습니다.
진묵대사의 효행은 단지 한 스님의 미담이 아니라, 부모은중을 깨달은 수행자의 마음자리를 보여줍니다.
진묵대사, 민중 속을 걸은 보살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는 전북 김제 만경의 불거촌(佛居村)에서 태어나 조선 중기의 전란과 혼란 속에서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던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그는 고려 말 나옹선사와 더불어 석가모니의 화신으로 추앙받았으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설화와 전설 속에서 살아 있는 보살로 기억되고 있다.
진묵대사가 살았던 시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시기였다. 그는 산중에 머물며 개인의 해탈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굶주린 백성과 함께 울고, 병든 사람을 돌보며, 고통받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자비를 실천하였다. 그래서 그의 삶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下化衆生)"는 대승보살도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진묵대사의 생애는 역사적 기록보다 설화를 통해 전해진다. 저술도 거의 남기지 않았고, 오직 몇 편의 게송만이 전해질 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점 때문에 그의 삶은 민중의 기억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남았다. 백성들은 진묵대사의 자비와 신통,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이야기로 전승하며 희망을 얻었다.
일곱 살에 전주 봉서사로 출가한 진묵대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스승의 가르침 없이도 불법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승려의 신분에 머물지 않았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의 가르침까지 두루 포용하며 유·불·선 삼교회통의 삶을 실천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승려이면서도 승려 같지 않고, 유자이면서도 유자 같지 않으며, 도인이면서도 도인 같지 않은 사람"이라 하였다.
특히 진묵대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극한 효심이다. 그는 출가 후에도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모악산 자락의 성모암에 모셨다. 지금도 성모암에는 그의 효성과 도력을 기리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진묵대사는 출가 수행자였지만 부모 은혜를 잊지 않았고, 이를 통해 불교의 자비와 유교의 효가 다르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진묵대사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그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이 시에는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와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진묵대사에게 우주는 거대한 법당이었고, 모든 생명은 한 몸이었다.
진묵대사의 삶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민중과 함께한 생활불교의 실천이다. 둘째, 부모와 가족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은혜 갚음의 삶이다. 셋째, 천지만물과 하나 된 우주적 자유의 경지이다.
그는 승속의 경계를 초월하여 민중 속에서 보살행을 실천한 수행자였고, 효를 통해 은혜를 갚은 인간이었으며, 온 우주와 하나 되어 자유를 노래한 도인이었다. 그래서 진묵대사는 오늘날에도 한국 불교가 낳은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위대한 보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말한다.
"참된 깨달음은 산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데 있으며,
참된 자유는 나를 벗어나 만물과 하나 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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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스님의 「오도송(悟道頌)」
우주를 품은 한 생각 ― 진묵대사 오도송 감상
천금지석 산위침(天衾地席 山爲枕)
하늘을 이불로 삼고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로 삼고
월촉운병 해작준(月燭雲屛 海作樽)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대취거연잉기무(大醉居然仍起舞)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각혐장수괘곤륜(却嫌長袖掛崑崙)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두려워지네
첫 구절은 깨달은 자의 광대한 마음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은 작은 집 한 채를 자신의 공간으로 여기지만, 진묵대사는 온 우주를 자신의 집으로 삼는다. 하늘이 이불이 되고, 땅이 자리가 되며, 산이 베개가 된다는 표현은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한다.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사라진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둘째 구절에서는 우주 전체가 법당이자 연회장이 된다. 달빛은 촛불이 되고, 구름은 병풍이 되며, 바다는 거대한 술통이 된다. 여기서 술은 세속의 취기가 아니라 깨달음의 법열(法悅)을 의미한다. 선사들은 깨달음의 기쁨을 흔히 술에 비유하였다. 마음이 텅 비어 자유로워질 때, 온 우주가 그대로 법의 향연이 된다.
셋째 구절에서는 깨달음은 무거운 엄숙함이 아니고, 오히려 삶 전체가 환희가 되는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진묵대사는 법열에 취해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이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무애행(無碍行)의 모습이다. 무엇에도 걸림이 없고,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이다.
마지막 넷째 구절은 이 시의 백미이다.
온 우주를 품은 선사의 마음은 곤륜산조차 작게 느껴질 정도로 크다.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염려된다는 표현은 자신의 몸이 커졌다는 뜻이 아니라, 깨달음의 경계가 우주를 넘어설 만큼 광대하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이는 자아가 사라지고 법계 전체와 하나가 된 대자유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이 오도송을 읽다 보면 진묵대사가 말하고자 한 깨달음은 특별한 신통력이나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체험한 마음, 집착에서 벗어난 무한한 자유, 그리고 모든 존재를 품는 광대한 자비의 세계이다.
결국 진묵대사의 오도송은 "세상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주 전체가 나의 집이 된다"는 선의 진리를 노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는 그의 웃음소리 속에서 우리는 좁은 자아를 넘어서는 선가의 호방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다음은 한국불교의 3보 사찰중 하나인 승보사찰 송광사와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불일암으로 갑니다.
글 : 정인(正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