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물었다.
"누군가 현종(玄宗: 도교의 심오한 뜻)에 대해 '금단법(金丹法)은 이승(二乘)의 좌선과 자못 같다.' 했다 합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내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것은 자양(紫陽: 장백단)이 한 말이다. 다르다고 하지 않고 같다고 했으며, 똑같다고 하지 않고 자못 같다 했으니 말이 구차하지 않다고 하겠다. 그러나 선(禪)을 익히는 자들이 이 말로 인하여 다른 견해를 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대승을 배우는 자는 이승(二乘)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범망경>에서는 이승을 삿되고 조잡하다고 꾸짖었거든, 더욱이 같으면서도 같지 않음에랴."
또 물었다.
"단(丹)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그를 위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납과 수은을 이겨 단을 만드니, 이것은 정(定)과 혜(慧)를 닦아 도를 이루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신과 기운이 응결하면 대단(大丹)을 이루게 되는데, 지(止)가 극진하고 관(觀)이 원만하면 진인(眞人: 仙人)이 아니더라도 무얼 더 기다리겠는가? 이렇게 구경(究竟)의 정점은 비록 다르지만 비유로 서로 밝힐 수가 있다. 현종에서는 오히려 몸의 정(精: 정기, 정액)ㆍ기(氣: 호흡, 숨)ㆍ신(神: 영혼)으로 외약(外藥)을 삼고, 사람들에게 내약(內藥)인 원정(元精: 하늘의 정기)ㆍ원기(元氣: 우주 자연의 기)ㆍ원신(元神: 영혼)을 구하게 했다. 그러나 저들은 다섯 가지 쇠나 여덟 가지 돌에 온 힘을 기울이거나 풀을 찾고 약을 달이는 데 급급하니, 또한 어리석은 노릇이라 할 것이다. 선종(禪宗)은 십지(十地)에서 견성(見性)하는 것도 장막이 한 칸 가로막힌 것으로 여기면서, 반드시 '영원히 무명을 끊어야만 비로소 묘각(妙覺)이라 한다.' 하였다. 저들은 화성(化城)에만 머물러 있고 백척간두에서 서성대는 자들이었으니, 오히려 멀고도 멀다 할 것이다. 그런데 석자사문(釋子沙門)으로서 부처님 혜명(慧命)을 이을 생각은 않고 이 따위 일에 깊이 빠져 <도덕경>을 외거나 <남화경>(<장자>)을 강의하고 있으니, 아! 어찌 이렇게 뒤바뀐 일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