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 오는 말로,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는 큰 깨달음은 열여덟 번이나 하였고 작은 깨달음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 보니, 도를 배우는 자가 때때로 알아차림이 있었다면 이것을 '살핌이 있었다'라고 부른다. 잠깐 살핀 것은 크게 깨달은 것이 아니니 이를 '작은 깨달음'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몇 번이라도 있을 수 있다.
큰 깨달음인 경우에는 세존이 새벽에 샛별을 보고 확연히 깨달으신 것과 같은 것으로, 한 번 깨달음에 모두 깨달으니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조사는 "바로 여기에 이르고 보니 다시는 아무것도 의심치 않네." 하였다. 어떤 이는 "이로부터 지방과 나라가 편안하고 천하가 태평하다." 하기도 하고, 혹은 "원래 황벽의 불법이 별것 아니었구나." 한 분도 있었다.
비록 부처님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것들도 역시 모두 큰 깨달음이다.
그런데 반드시 중중첩첩 이와 같아야 한다면, 전에 의심치 않겠다던 것을 다시 의심하게 될 것이요, 전에 태평하던 것이 다시 변란(變亂)하게 될 것이며, 전에 별것 아니던 것이 다시 부족하게 될 것이다. 이를 어찌 큰 깨달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설령 무명을 끊었으나 최후 지극히 미세한 무명을 끊고자 하며, 공안을 뚫었으나 최후 극칙의 공안을 뚫고자 하면 몇 번이고 큰 깨달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많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중복되어 열여덟 번에나 이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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