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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원

작성자솔안|작성시간26.06.22|조회수12 목록 댓글 0

불타버린 자리에서 싹이 돋았다.

고운사 산불 현장을 처음 찾았을 때, 나는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수 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검은 기둥만 남긴 채 서 있었다. 그 회색 침묵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그 자리를 찾았을 때, 재가 된 흙 위에 작은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죽은 나무의 뿌리 곁에서, 빗물이 고인 자리에서, 이름 모를 풀씨들이 조용히 싹을 틔우고 있었다. 숲은 스스로 순환하고 회복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緣起)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모든 생명은 홀로 나고 홀로 지지 않는다. 나무가 쓰러져 흙이 되고, 흙이 풀을 품고, 풀이 벌레를 먹이고, 벌레가 새를 살리고, 새가 씨앗을 나른다. 죽음조차 이 순환의 한 고리일 뿐, 어떤 생명도 이 흐름 밖에 있지 않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숲이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 한 그루의 나무의 쓰러짐이 얼마나 많은 생명과 이어져 있는지를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경이었고 경이로움이었다.

이 책은 그 눈빛들에게 빚진 글이다. 뜻을 같이하는 도반들과 함께, 불교의 생태 지혜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새기고, 우리가 이 순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선언하고자 한다. 완성된 답이 아니라, 함께 하겠다는 발원이다.

이 책을 펴드는 당신도 이 생명 순환의 한 고리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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