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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습자료

PDF책(무료 배포) - <비판불교의 파라독스>

작성자관리자|작성시간23.07.01|조회수857 목록 댓글 15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발간한 논문 모음집 <비판불교의 파라독스>를 PDF 파일로 만들어 무료 배포합니다. 파일 용량이 커서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서 링크 걸었습니다. 아래의 링크 클릭하여 우측 상단의 화살표 클릭하면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M8skJi9jjr2JDFshP7zxefFSx9wPPAp1/view?usp=sharing
 
해인사 장경각에 소장된 '고려대장경'의 전산화를 끝낸 후 '고려대장경연구소'가 문을 닫으면서 절판되었던 책인데, 일본 불교 조동종 종립 대학인 고마자와 대학에서 일어난 비판불교 운동의 종교정치적 음모를 파해치고, 그 학문적 문제점을 지적한 우리나라 학자들의 논문 모음집으로 학문적 가치가 너무나 높기에, 당시 소장이셨던 종림 스님의 허락을 받아서 이렇게 PDF본으로 만들어 보급하게 되었습니다.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기치를 걸고, 일본 불교 조동종의 종립 대학인 '고마자와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학문운동을 '비판불교(Critical Buddhism)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조동종의 총무원장이었던 '마치다 무네오'의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인해 실추된 조동종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기획된 '유사 학문 운동'이었습니다. 
 
1999년에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는 이러한 비판불교 운동의 학문적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6차례에 걸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모아서 2000년 2월 <비판불교의 파라독스>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발간했습니다. 그 결과 '비판 불교 운동'이 순수한 학문 운동이 아니었다는 점, '비판 불교 운동'의 일환으로 발표된 논문들 역시 학문적으로 엄밀하지 못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논문 가운데 심재관 박사의 <비판불교란 무엇인가: 그 학문과 실천의 전제들에 관하여>의 p.42에는 다음과 같이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종교정치적 동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 p.169에 실린 제(김성철) 논문 <중관 사상에 대한 마츠모토의 곡해>에서는 마츠모토 시로의 학문적 능력과 엄밀성을 낱낱이 해부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일본에서 일어난 '비판불교 운동'은, 1999년 우리나라 불교학계에서 깊이 있게 검토한 후, <비판불교의 파라독스>라는 논문 모음집을 통해 그 허구성과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불교학계에도, 일본의 '비판불교 운동'을 객관적이고 수준 높은 학문 운동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일본에서 '비판불교 운동'이 일어나자, 곧 이어 하와이 대학에서 이들 일본 학자들의 논문들을 영역하여 <Pruning the Bodhi Tree: The Storm Over Critical Buddhism>라는 제목의 논문집을 발간했는데, 이 책 역시 우리말로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서점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734628
 
위에 올린 <비판불교의 파라독스 PDF본>이 널리 보급됨으로써, '비판불교 운동'의 학문적 문제점이 우리 불교학계에 널리 알려지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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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관리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04 본 카페 게시판 다른 곳에서도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보리심님께서 앞으로 전문 불교학자의 길을 걸으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쓰기 힘들기에, 위에 올린 '(감히) 쫑카빠 비판'을 하게 된 근거에 대해, 이곳에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1. <중론> 제18장의 산스끄리뜨문 제목이 원래 아뜨만[自我]의 검토(ātmaparīkṣā)라는 이름의 제18장입니다. 즉, '관아품(觀我品)'입니다. 그런데 구마라습 스님의 한역 <중론>에는 '관법품(觀法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문이 제18장을 '법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논파'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입니다.

    2. "'공'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자성이 없음'을 의미한다."는 티벳불교의 통설에 대한 저의 비판은, 일단 <중론> 청목소 제13장 관행품 제5게의 전후 맥락에 근거합니다. '자성이 없음'이 공을 의미한다고 도그마처럼 내세울 경우, 청목소의 제4게 바로 앞의 문답에서 보듯이 "자성이 없는 존재가 있다."는 착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공을 설하지만 나중에는 '공'조차 파기하는 '공공'의 가르침, 경우에 따라 '무아'조차 침묵으로 대처하신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이런 제 생각의 근거가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리심 | 작성시간 23.07.04 외람된 말씀이지만, 무자성을 도그마처럼 내세운다는 주장은 상대방 입장에 대한 곡해가 아닌가 싶습니다..쫑카파 대사도 '무자성'에 '자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는 없으니까요..쫑카파 대사의 입중론 주석서인 우마공빠랍쎌에 나오는 '공성을 포함한 일체법이 승의로 존재하지 않고 언설로만 존재한다'는 테제로 '무자성의 무자성'이 충분히 해명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역으로 부처님의 침묵이나 공공을 도그마로 삼을 때의 폐해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용수보살은 단지 침묵이나 공공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법을 설하셨습니다. 단지 침묵과 공공이 공성이고 승의라면 부처님과 용수보살은 선사들의 표현처럼 개구즉착開口卽錯의 실수를 하신 셈입니다. 과연 그분들이 진리에서 멀어진 실수를 하신 걸까요
  • 답댓글 작성자보리심 | 작성시간 23.07.04 침묵, 공공처럼 어떠한 견해도 내세우지 않음을 공성이라 여기는 주장의 오류와 문제점에 대해서 쫑카파 대사는 자세히 논한 바 있고, 그러한 문제점들이 단순히 가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발생함을 불교사적 사실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도 익히 아실 것이고 댓글의 한계도 있어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공성을 자성이 없음으로 해석하는 견해는 쫑카파 대사나 티벳불교만의 주장이 아니고 찬드라키르티의 중관사상에 대한 티벳불교의 계승 내지 재해석에 해당하므로, 교수님이 청목소로 논의를 환원하셨듯 이를 티벳불교만의 주장으로 국한하지 말고 인도불교에서의 중관 논의와 연계시켜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리심 | 작성시간 23.07.04 어찌됐건 아무것도 모르는 말학의 댓글에 친절히 답해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댓글달다보니 쫑카파 대사의 충실한 지지자?처럼 옹호하게 되는데 사실 람림 기준에서 보면 불자라고도 보기힘든, 되먹지 못한 종자인지라 부끄럽고 낯뜨거워집니다

    기회가 되면 쫑카빠 대사의 사상적 대척점에 있던 고람빠나 고람빠의 영향을 받은 닝마, 까규의 학자들, 그리고 동아시아의 반야사상까지 공부해보고 싶은데 금생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공부하면서 교수님의 관점도 참고하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회향심 | 작성시간 24.09.11 2024.09.11.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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