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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존하는 종교의 진리들- 진리에 대한 탐구

작성자원광 대은|작성시간18.11.27|조회수23 목록 댓글 1

법우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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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강에서 우리는 종교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가장 으뜸된 가르침이며,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1강에서 서술한 우화에 나오는 구름에 표시한 다람쥐와 같이, 끊임없이 변하는 사실을 진리로 두고 탐구한다면 계속 변하고 발전하는 시대와 문명 속에서 그 진리는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왔다.

그렇기에 진리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어야 하며, 그 변하지 않는 사실을 바탕으로 두고 종교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말하기 이전에, 인류가 그동안 어떤 사실을 근본 바탕으로 하여 진리라 탐구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1.진리에 대한 탐구




인류는 어떻게 진리를 탐구하였기에 
거짓된 진리로 문명을 발전시켜왔을까?

진리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따라서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경험이 
개별성과 보편성을 만족시켜야 하며 나아가 
불변(不變)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류가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진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해는 동()에서 떠서 서(西)로 진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이다. 
그리고 누구나가 하는 경험이다. 
따라서 이 경험은 개별성과 보편성을 
모두 충족하였기에 사실이다. 

그리고 또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가지고 
규칙적으로 지속될 뿐 
불규칙하게 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사실은 진리의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이 진리임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고 할까.

그런데 문제는 해가 서로 저물었으니 
다음 날은 당연히 서에서 떠올라야 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동에서 뜬다. 
이것은 서로 저문 해에 밤새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천문학이 발달한 현대(現代)에 있어서는 
지구가 자전(自轉)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상식(常識)이 되어 버렸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던 시절에는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추측은 낮 동안의 해의 움직임이
근거가 되었다.

낮 동안의 해는 동쪽에서 솟아올라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하늘 높이 올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다시 서서히 
내려와 서쪽 밑으로 사라진다. 

이런 낮 동안의 움직임을 가지고 유추하자면 서쪽 밑으로 사라진 해는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밑으로 내려갈 것이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내려가면 다시 서서히 
올라오다가 드디어 동쪽 밑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고대인들이 상상한 해의 움직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된다. 
그리고 일 년 일 년이 모여 일생이 된다
.

다시 말해서 아침에 동쪽에서 떠올라 
서로 이동하면서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사라진 해가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동쪽에서 솟아나듯이, 

봄이 되면 땅 밑에서 싹이 나와 
꽃을 피우고, 여름이 가까워지면 꽃은 지고 
그 자리에 열매가 열려 무럭무럭 자라다가 
한여름을 기점으로 성장을 멈추고 
익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을이 찾아와 다 익은 열매는 
떨어져 땅속으로 사라지면, 열매는 서서히 
부패하다가 한 겨울을 기점으로 
다시 소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다시 싹이 트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제의 태양이 오늘도 뜨듯이 
작년의 꽃이 올해에도 피는 것이다
.

이처럼 인간도 탄생을 하고 무럭무럭 자라다가 젊음을 기점으로 늙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면 저문 해가 동쪽으로 이동하듯 
저문 열매가 겨울을 살다가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듯 
죽음을 살다가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해가 서로 진 것은 땅속에서 보면 
해가 뜬 것이고, 가을에 씨가 떨어진 것은 
겨울 입장에서 보면 씨의 출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은 삶의 입장에서는 
죽음이지만 죽음의 입장에서는 탄생이다. 
다시 말해서 죽음은 죽음의 세계로의 
탄생인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세계로 탄생한 사람은 무럭무럭 자라다가 죽음의 세계에서의 젊음을 
정점(頂點)으로 다시 늙기 시작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다시 삶의 세계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생은 하루처럼 
일 년처럼 반복될 뿐이다.

고대인이 상상한 삶과 죽음


그러다 보니 삶에는 아침에서 저녁까지의, 
그리고 봄에서 가을까지의 이미지가 적용되었고, 죽음에는 저녁에서 아침까지의, 그리고 
가을에서 봄까지의 이미지가 적용되었다. 

따라서 삶이 낮이요 여름이라면 
죽음은 밤이며 겨울이다. 
때문에 삶에는 밝음과 따뜻함 그리고 또 만물이 소생하고 자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죽음에는 어둠과 추움 그리고 또 그 무엇도 
자랄 수 없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여되었다.

고대인들이 상상한 계절의 움직임과 삶과 죽음의 이미지


따라서 삶의 세계에 존재하는 추위, 굶주림, 
질병, 두려움, 좌절, 불행, 괴로움, 슬픔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본래 삶의 세계의 것들이 아니라 죽음 세계의 것들이 삶의 세계를 
침범하여 생겨난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죽음의 세계의 부정적인 것들이 삶의 세계를 더럽힐 수 있었을까?


그것은 삶과 죽음의 세계가 연결되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탄생과 죽음의 순간이다. 

다시 말해서 탄생이란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이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에는 
죽음의 세계가 삶의 세계와 연결된다. 
그리고 죽는 순간은 생명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따라서 이 순간에도 죽음의 세계가 삶의 세계와 연결된다. 
이 순간에 죽음의 세계의 부정적인 것들이 
삶의 세계를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탄생하면 칠일에 한 번씩 일곱 번의 
잔치를 하고 백일이 되면 백일잔치, 
일 년이 되면 돌잔치를 하고, 죽게 되면 칠일에 한 번씩 일곱 번의 제사를 지내는 사십구재를 하고 백일이 되면 백일제 일 년이 되면 초재를 지내는 의식을 통해서 죽음의 세계와 
연결되었을 때 함께 나왔을 부정적인 것들을 
다시 죽음의 세계로 돌려보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

그런데 죽음의 세계와 연결되는 순간 이외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삶의 세계를 
오염시킬 수 있는데 그 순간은 하루에서는 
밤이며 일 년에서는 겨울이다. 

왜냐하면 신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주관하는 신으로 구분되는데,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이 호시탐탐 
삶의 세계를 노려서, 삶의 세계의 신들의 
힘이 약해지는 밤이나 겨울이 되면 
쳐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에게 
재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며 강력한 힘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인류에게 있어서 
초기에 등장한 종교는 보통 이와 같았다. 

시간을 원으로 파악하고 삶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탄생과 죽음에 대한 특별한 의식을 가졌다. 

그러나 인류가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그리고 민족국가로 발전하면서 
종교의 목적은 생활에서 
정치(政治)로 바뀌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고방식을 계승한 
아리아족들은 우파니샤드 철학을 탄생시키고 
윤회(輪廻), (), 그리고 나아가 
해탈(解脫)과 같은 개념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또 샘 족이나 한족(漢族) 
해가 서로 진 후 다시 동에서 뜨는 것에 대한, 
다시 말해서 진리를 새롭게 고찰하게 되고, 
그래서 유일신(唯一神) 적인 사고방식이나 
음양론(陰陽論) 적인 
사고방식을 탄생시키면서 
인류는 다양한 종교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출처:http://naver.me/GZqRh6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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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마니주 | 작성시간 18.11.29 나무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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