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왕여래 (2) / 청화 스님
《인연법은 우주의 도리》
'나'라는 존재가 금생에 부모님 연(緣) 따라서 태어난 것도,
그래서 몇 십년동안 사는 것도, 살다가 죽어서 가는 것도,
모두가 다 우주의 도리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철학 그러면 어렵지만 인연법(因緣法)이라 그러면 쉽지 않습니까?
가장 고도한, 가장 확실한 철학이 인연법입니다.
따라서 불자님들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금 상식적으로 불교를 믿다가는 불교의 어려운 말로 자구불료(自求不了)라,
자기도 제대로 구제를 못한단 말입니다.
스스로 자(自)자, 구할 구(求)자, 아니 불(不)자, 마칠 료(了)자,
자기 하나도 구제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구제하지 못한 사람이 소리소리 질러 봐도 남을 구제 못 시키지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가 번뇌에 칭칭 구속되어 있는데 어떻게 남을 제도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불교를 철학적으로 해석하지 않고서는
바꿔서 말씀드리면 인연법으로 연기법으로 부처님 법을 해석하지 않고서는
자기도 구제를 못합니다.
아울러 자기 집안의 아들이나 딸이나 자기 남편이나
자기 아내한테도 영향을 못줍니다.
인연법은 대체 어떠한 것인데 그와 같이 자기도 구제하고 남도 구제한다는 말인가?
인연법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원자 하나도 모두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 영국에 있는 눈에 안 보이는 원자나 또는 한국에 있는 분자 하나
모두가 다 같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宇宙)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체(有機體)입니다.
어느 것도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이것이 인연법의 도리입니다.
어째서 우주의 만법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 하면은
본래로 하나인 자리에서 인연 따라서 잠시간 모든 존재의 모양이 나왔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나, 너라는 존재나, 어떠한 미세한 존재나,
우주에 있는 두두물물이 본래는 하나의 자리에서 인연 따라서
잠시간 모양을 내고 있는 것이니까, 하나의 자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본래로 하나의 생명입니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천지가 나와 더불어서 같은 뿌리요,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라, 만물이 모두가 나와 더불어서 같은 몸입니다.
이것이 연기법으로 보는 가치관입니다.
불자님들, 지금은 꼭 부처님 가르침을 본질적으로 믿으셔야 자기 구제(救濟)가 되고
자기 복리(福利)가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 세계의 탁류에 휩싸여서 얽히고설킨 그런 상식(常識),
상식이라 하는 것은 비록 공통되는 점도 있다 하더라도
이 사람 의견 다르고 저 사람 의견 다르고 하지 않습니까.
상대적인 범위에서 불교를 믿는다고 생각할 때는
이렇게 얽히고설킨 이른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기주의 주장을 내세워서
이렇게 혼란 무궤도한 사회에 있어서는 힘을 못 냅니다.
저 사람의 주의나 나의 주의나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나
모든 것을 다 알고서 포섭할 수 있는 철학적인 지혜가 지금은 필요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른바 96종 외도(外道)라, 아흔 여섯 가지의 외도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가지가지의 외도를 다 포섭했습니다.
지금같이 공산주의 비슷한 것도 있었고 사회주의도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같이 복잡다단한 현대를 바로 살기 위해서는,
현대를 바로 산다는 거창한 이야기를 않더라도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 한 집안의 현모양처가 된다, 이런 차원에서만 본다 하더라도
지금 바른 철학이 없이는 못살아 갑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인간 이것이 만능의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과거 전생에 선도 행하고 악도 행하고
그런 과보로 해서 잠시간 지금 같은 몸을 받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아는 것도 역시 시간과 공간에 항시 제약이 됩니다.
이 무제한적인 것을 우리 중생은 모르는 것입니다.
천상도 분명히 존재하고 지옥도 분명히 존재하건만
중생은 어두워서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에 가려서 못 봅니다.
우리가 못 본다 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원자가 우리 눈에는 안보이지 않습니까. 바람이 안보이지 않습니까.
그와 똑같이 인간 존재라 하는 것은 지금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가 내세울 정도로
그와 같이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닙니다.
과거 전생에 지은 업장 따라서
잠시간 사람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인간 존재입니다.
여러분들이 반야심경을 해서 다 아시지 않습니까.
내 몸뚱이도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잠시간 합해 있습니다.
《모든 허물(죄악)은 자기 몸에서 나온다.》
모든 허물이 자기 몸에서부터 나옵니다.
자기 몸뚱이만 소중하고, 그 다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몸이 소중하고,
여기서부터 인간의 죄악이 싹터 나옵니다.
자기 몸뚱이를 초월하는 그런 지혜가 있을 때는
인간의 고뇌는 발생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선 모든 죄악의 원인이 되어 있는,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되어 있는
자기 몸뚱이가 무엇인가?
이 몸뚱이를 인연법으로 볼 때는 산소, 수소, 탄소, 질소 그런 원소들이
인연 따라서 잠시간 결합되어서 이와 같은 현상을 냈단 말입니다.
이 현상을 보고 내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
앞서 어렵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존재론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우리 몸이 그와 같이 허망무상한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모양을 나투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역시 자기 몸이 소중한 분은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범부는 모양만 보이는 것이지
모양의 본질인 저쪽 세계, 참다운 실상(實相)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실상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볼 견(見), 성품 성(性), 인생과 우주 만유의 본성인 불성(佛性)을 체험하는 것을 가리켜서
견성이라고 합니다.
견성이 되어야 몸뚱이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견성을 미처 못 한 사람은 말은 그럴 듯하지만
돌아서면 내나야 자기 몸이 더 소중합니다.
자기 아들 몸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 차원에서는 아직 속물입니다.
속물근성을 미처 못 떠나서 사회운동을 한다, 무엇을 한다, 물론 해야 되겠지만,
그런 운동이 온전히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운동을 하던지 간에 먼저 선행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기 스스로가 먼저 속물을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떠나려고 애써야 되는 것입니다.
떠나려고 몸부림치고, 남을 비판하는 그런 안목으로 우선 자기를 비판해서
속물을 떠나야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감로수(甘露水)같습니다.
감로수같이 정말로 진진하고 불멸의 행복(幸福)과 자비(慈悲)와 지혜(智慧)와
모든 것을 다 포함한 그런 맛입니다.
그런 맛에 정말로 우리가 가까워지면
그때는 몸도 마음도 가뿐하니 행복에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 몸도 마음도 행복에 충만 하는 그 자리가
그렇게 어려운 자리는 절대로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