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법화경/5강-5 역연으로도 가르치다
慧明華추천 4조회 13115.06.17 00:30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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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 다시 법화경 無比스님,봉은사선교율대법회기록(2011.11-20013.11) 역연으로도 가르치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대혜스님이 지은 『서장』강의가 행해지고 있다. 대혜스님은 불교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선지식이고 간화선을 창시한 창시자다. 대혜선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차라리 모든 중생들을 대신해서 지옥의 고통을 받을지언정, 이 입으로 불법을 가지고 사람들의 정(情)에 맞추어 적당히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겠다.” 선사다운 말씀이다. 이러한 원(願)이 있어야 한다.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적당하게 이야기하면 불교가 그것뿐이라고 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불교적 안목을 멀게 한다. * 『법화경』불교는 다른 불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혜스님의 말씀처럼 차라리 중생들의 지옥고통을 대신 받을지언정 인정에 맞춰서 여러분들의 수준에 맞춰서 불교에 대한 눈을 어둡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 여러분들에게 거슬리는 인연인 역연(逆緣)이 된다하더라도 결국 이야기해주는 내게 큰 복이 되고 결국 또 듣는 사람에게 큰 복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인연에도 역으로 거슬리는 역연(逆緣)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대로 따라주는 순연(順緣)이 있다. 예를 들어서 아이를 교육시키려는 부모들은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때로는 아이들에게도 회초리를 들 수가 있고 심하게 꾸짖을 수도 있다. 심지어 밥을 굶길 수도 있다. 황벽스님같은 이들도 자기 어머니를 굶겨서 죽게 했다. ‘우리 아들이 선지식이 되어서 수천명 대중을 모아놓고 큰 설법을 한단다.’해서 고향에서 그 소문을 들은 어머니가 잘난 아들을 보러 갔다. 그런데 황벽스님은 밥한그릇 주지 못하게 하고 어머니를 쫓아냈다. 수백리 길을 아들을 보고자 걸어왔는데 문전에서 쫓겨난 어머니는 결국 굶어 죽고만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죽는 순간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너에게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러한 진리의 눈을 뜰 수 없었을텐데, 쫓겨남으로해서 인간적인 정을 다 떼버리고 그보다 훨씬 차원 높은 진리의 세계,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네가 밥을 주고 좋은 방에다가 나를 두고 큰절의 대선지식의 어머니라고 시자 몇 딸려주고 나를 위했더라면 내 꼴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내 인생은 그것으로써 끝났을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내 아들로부터 쫓겨났고 굶어죽는 지경에까지 이름으로 해서 비로소 진리에 대한 눈을 뜨게 됐고, 인간적인 차원을 훨씬 초월한, 차원 높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찬사를 했다. 이것이 역연이다. 역으로 가르치는 것도 좋은 교훈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황벽스님의 어머니와 같은 처지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눈 감아도 좋으니까 아들에게 대접이나 받다가 돌아올 것인가, 보다 다른 차원의 어떤 큰안목에 눈을 뜨는 일, 설사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보다 더 다른 차원의 눈을 뜰 수 있는 그 길을 선택하겠는가. 불교에는 이런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 저는 낯선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가끔 저와 좀아는 사람들이 저에게 뭘 가져왔는데 마음에 안들고 필요치 않는 물건이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돌려보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거 받아주면 되지. 다음에 다른 것 해오라고 말하면 되지.’라고 하지만,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절대 교육이 안된다. 오해하든 말든 상관없다. 좀 섭섭하더라도 물건을 풀지도 못하게 하고 그 자리에서 들고 가라고 해야 그 사람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된다. 그런 것도 역연이다. -선교율 대법회 법화경 5강-5(2012.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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