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묘련 큰스님을 원효로에서 만나다 (맹구우목님 글 옮김)
일념통천추천 0조회 5425.03.27 08:0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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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 [옮긴이의 말:1998년 원적에 드신 석묘련 큰스님께서는 평생을 묘법연화경 수행에 힘쓰셨는데 팔만대장경 전체를 세 번 보시고 청장년 때 이미 묘법연화경 3,000독을 하셨다고 합니다.] 석묘련 스님께서는 출가전 16세의 나이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3년간 옥고를 치릅니다. 사상범이 되니까 독방에서 갇혀지내시다가 할 일이 없어서 오직 관세음보살 염불만 하십니다.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님이 주신 어떤 책을 한 권 받습니다. 갇힌 후 3년만에 해방이 되어서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찾아보니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전이었습니다. 자주 21일간 기도를 하셨습니다. 물론 폐문하시고 불출하셨습니다. 천공을 드셔서 먹지도 않고 배설도 하지않았습니다. 추위도 모르시고 눈발을 맨발로 다니시고 눈 속을 옷 한 벌로 지냈습니다. 전쟁통에 북한군이 속가의 형님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소식을 듣고 북한군이 보이지도 않는데도 결계(結界)를 하시고 손가락을 튕겨 납치한 북한군을 전부 쓰러뜨립니다. 형님과 몇몇 분은 포박된 채로 하산합니다. 그 때만해도 사람들이 순수 해서 회고하시기를 북한군이 쓰러져서 몇 시간이 지나도 좀 채 일어나지 않으니까 도망쳐서 하산했다고 합니다. 노보살님께서는 글을 모르시는 분입니다. 할아버지(부군님)도 이미 돌아가시고 딸자식 하나마저 살림이 궁해 노보살님은 세속에서 천대받고 절에서 지내게 됩니다. 노보살님께서는 공양을 짓고 사시마지를 올리는 소임을 맡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실상묘법연화경 일승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중에서 나무묘법연화경은 한국의 호법선신들이 싫어하니까-일련종과 임진왜란 그리고 일제압박의 역사때문-나무 실상묘법연화경을 염하라고 노보살님께 시킵니다. 그런데, 염하기를 70일쯤하며 지내자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보살님은 후원채에 있으면서도 묘련스님이 법당에서 부처님을 향하는지 신중단을 향하는지 영단을 향하는지 다 아시고 스님과 똑같은 방향으로 합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시종 거사님이 그걸 보고서 노보살님의 경계를 같이 알자고 종용해서 노보살님이 실토합니다. 산이 없어진답니다. 서울도 보이고 부산도 보이고 지옥도 보이고 천상의 세계도 다보입니다. 스님들이 정진할 때는 모든 호법선신들이 문무백관처럼 도량주변에 꽉 드러차서 위호한답니다. 그러니까 정진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을 잘 지켜야한답니다. 호법선신들이 꼭 그 시간에는 나와서 기다리니까요. 사시불공중 변식진언을 하면은 수천 수만명이 한꺼번에 공양을 받는답니다. 수천 수만명이 줄을 서서 순식간에 한그릇씩 공양을 받는답니다. 조시종 거사님이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보았느냐고 물으니까 노보살님은 아직 못보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는 남편이었던 할아버지가 한 줄의 맨 끝에서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그동안 실상묘법연화경을 염하고 공양지은 공덕이었을겁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하고 누가 올 것인지 비가 올 것인지 눈이 올것인지 다 아셨습니다. 큰 비는 천상에서 회의해서 결정한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스님께서 나중에 그간의 일들을 아시고 노보살님을 장군죽비로 몇 대 때리시고는 더 이상 발설해서 이 스님으로 하여금 죄짓게 하지말라해서 그 후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조시종 거사님은 중학교 다닐 때 묘련스님과 인연이 됩니다. 사람들이 모두 살기를 고통속에서 마지못해 사는데 그냥 죽어버리면 되지않느냐고 스님에게 묻습니다. "만약 손가락이 아플 때 이 병원으로 저 병원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다니기만 한다면 그 아픔이 사라지겠는가? 죽어서 저 세상에 간다고해도 마지못해 사는 고통은 여전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십니다. 그 중학생은 스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해서 오직 염불만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염불하다가 산고개를 넘는데 화관을 하신 보살마하살님이 나타나서 정중히 합장을 합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거사님이 합장을 따라서 합니다. 황홀함 속에서...잠깐 사이에 집앞에 당도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화경의 여래수량품을 가장 강조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이 무어라고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설명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내용을 묻기라도 하면은 감히 중생의 입으로 경전을 해석한다고 호통치시며 도가 익어 도가 터지면 자연스럽게 계합할거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독경과 실상묘법연화경을 염하는 것과 중생에게 이익되는 행을 강조하셨습니다. 독경의 공덕이란 경을 읽는 것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독경할 때 호법선신들이 위호하는데 그 호법선신들의 덕을 보자고 모여든 영가들이 독경소리를 듣고 혹 마음이 쉬어지고 혹 천도가 되어서 그 공덕으로 독경하는 자의 공덕이 되어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스님이 거처하는 도량에서는 최소 3일씩 폐침하고 정진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잠이라도 자려고하면 밤이든 낮이든 집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세속일의 지어짐은 대부분 선신들의 의도입니다. 전쟁통에도 법화경을 독송한 가정들은 무탈하였습니다. 조시종 거사님께서 백일기도를 하고 다시 보름기도를 올립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천장을 보니 천장이 없어지고 푸른 하늘만 보이는 경험을 합니다. 다시 보름기도를 올립니다. 묘련 스님은 조시종 거사가 정중히 묘법연화경과 동의보감을 올리는 꿈을 꿉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조시종 거사를 불러 기도를 중지시킵니다. 조시종 거사님은 얼마 전 입적하셨습니다. 거사님은 한국 불교에 대해서 항상 애정과 관심을 쏟았던 우리시대 보기드문 보살이셨습니다. 생전에 거사님의 풍모를 보았다면 제 말에 바로 곧이 들을 것입니다. 항상 웃으시고 항상 얼굴빛은 환하였으며 마지막까지 쌍계사 신도와 대중에게 서울에서 하동까지 오가면서 봉사를 하신 보살이셨습니다. 조시종 거사님은 아마 한국에서 법화경 여래수량품을 가장 많이 독송했을거랍니다. 손목이 아프면 요령을 천으로 손목에 묶어서 독경을 계속하셨고 요령의 저가 다 닳아지도록 독경하셨습니다. 그 증거인 요령은 전라도 장성의 한 사찰에 있답니다. 제가 앉아서 울 수만은 없을 때 무상함을 배웁니다. 돌미륵 합장 출처: 다음 돌미륵 블로그 맹구우목님 글 옮김 작성자 : 상방대광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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