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 시방중생

작성자원광 대은|작성시간18.08.29|조회수28 목록 댓글 0

2. 시방중생十方衆生


  법장보살의 성불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다음 네 글자 ‘시방중생’을 위한 것입니다. ‘시방중생’을 위해 ‘설아득불’을 한 것으로, 시방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내가 성불하겠다는 설정을 한 것입니다.


  ‘중생’: 감정과 의식(情識)을 갖고 있는 모든 생명을 말합니다. 천상의 신선, 지상의 인류, 돼지·말·소·양, 미세곤충들도 다 여기에 속하고 지옥·아귀도 전부 중생에 포함됩니다.


  ‘시방’: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공간적 개념입니다. 불교에서는 허공을 열 개의 방위로 나누기 때문에 시방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다가 위·아래를 더하면 육방이 되고, 다시 더 세분하여 동남·동북·서남·서북을 더하면 시방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작은 지구에만 생명이 있는 게 아니라 끝없는 허공 가운데 무량무변한 세계가 있으며, 이 하나하나의 세계마다 모두 상응하는 중생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를 ‘시방중생’이라 총칭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방허공 가운데 모든 세계 모든 중생’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시방중생’이란 얼마나 광대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방은 광대하고 무량무변하여 위로는 천당에 이르고 아래로는 지옥에 이르며, 일체 미세하고 유연한 곤충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법장보살께서 구제하겠다고 발원한 대상입니다. 이로써 법장보살의 원심이 얼마나 광대하고 원력이 얼마나 깊고 두터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심과 이러한 수행, 이러한 성불의 원력을 가히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법장보살께서 시방중생을 구제하시는 데는 보편성·평등성·치중성·겨냥성 등 이 네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첫째는 보편성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보편적으로 시방세계의 일체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하려 합니다.


  둘째는 평등성입니다. 시방중생 가운데 남녀노소·재가자와 출가자·지혜가 있든 없든·수행이 있든 없든, 아무튼 누구라도 왕생을 하고 싶고 염불만 한다면 아미타부처님은 모두 평등하게 구제하여 접인왕생接引往生하고, 왕생을 한 후에는 모두 평등하게 성불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치중성입니다. 죄업을 짓는 범부를 구제하는 데 치중합니다. 원문에서 설하시길, “다만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자는 제외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구제하려는 시방중생 가운데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왜 죄업의 장애가 있는 범부를 구제하는 것에 치중할까요? 두 가지 점이 있습니다. (1) 범부이기에 구제가 필요하고, 죄업의 장애가 있는 범부는 더욱 구제가 필요합니다. (2) 죄업을 짓는 범부, 심지어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를 지은 사람조차도 모두 구제할 수 있다면, 일체 중생 가운데 구제될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치 의사가 사람의 목숨을 구할 때 위중한 병·위급한 병일수록 더욱 먼저 구해야 하는 것과 같고, 또 마치 대부장자가 보시를 하는데 빈곤한 사람일수록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는 겨냥성입니다. ‘시방중생’의 범위가 너무나 광대하지만 역시 하나하나의 중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방중생’은 곧 하나하나의 중생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우리자신입니다. 선도대사님은 ‘자신’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대부장자가 보시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나의 몫도 있다. 나는 지금 받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부장자도 보시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듣고 나서 단지 ‘대부장자가 보시를 하고 있다’는 생각만 하고 ‘바로 나에게 보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받으러 가지 않는다면, 만일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대부장도 재물을 보시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구제하려는 ‘시방중생’은 바로 나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나를 어떻게 구제하려 하는가? 나는 어떻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래에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열 번만이라도 염불한다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제될 방법이자 또한 아미타부처님께서 우리가 실행하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머지 일들은 모두 아미타부처님께서 다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왕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왕생할까? 왕생한 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 모든 것을 아미타부처님께서 다 해주시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원문에서는 이어서 “만일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우리를 위해 “너희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열 번을 염불한다면’, 너희가 그래도 왕생할 수 없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내가 성불을 하지 않는 것으로 책임지겠다!”고 보증하셨습니다.


  제18원에서 우리에 대한 구제를 완성하기 위해 부처님과 우리는 각자 분업이 있으므로 분담하여 협조를 해야만 완성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쪽에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열 번만이라도 염불하는 것’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는 믿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구제하려 한다. 너희는 어쨌든 나를 믿어야 한다. 너희가 나를 믿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너희를 구제할 수 있겠는가?”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는 발원입니다. “내가 너희를 구제하려는데 너희도 내가 구제해주는 것을 원해야 한다. 너희가 원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너희를 구제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믿음이든 발원이든 간에 단지 일념에 불과합니다. 일념을 믿어도 믿는 것이고 일념을 발원해도 발원한 것이므로 무슨 일이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약간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의 ‘내지 열 번을 염불하는 것’입니다.


  ‘내지 열 번을 염불하는 것’은 행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별로 어렵고 크고 깊은 행은 아닙니다. ‘위로는 평생을 다하고 아래로는 십성·일성에 이르기까지’ 각자 근기에 따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칭명을 하면 됩니다. 시방중생에게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대장경속의 모든 경전을 다 읽어봐도 왕생은 이 세 구절에만 있습니다. 즉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열 번을 염불한다면’입니다. 세 구절을 한 구절로 압축하면 바로 ‘내지 열 번을 염불한다면’, 즉 ‘한결같이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잘 연구해서 이를 실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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