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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법정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2. 놓아두고 가기 - 겨울 채비를 하다

작성자햇살|작성시간19.11.28|조회수22 목록 댓글 4



            2. 놓아두고 가기 - 겨울 채비를 하다 / 법정스님 요 몇 해 사이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 때문에 산중의 겨울 살림살이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다. 눈 고장에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고 강추위가 잇따르면 무엇보다도 식수원인 개울이 얼어붙어 물을 구할 수 없다. 혹독한 추위일지라도 눈이 내려 쌓이면 이를 보호막으로 얼음장 밑으로 물은 흐른다. 그런데 눈이 내리지 않고 강추위가 계속되면 개울이 바닥까지 얼어붙어 물을 찾을 수 없다. 작년 겨울 한동안은 얼음을 녹여 식수로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극한 상황 속에 살면 사람의 심성 또한 얼어붙어 물기가 모자란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물을 찾아 이주해야 한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어쩔 수 없이 물이 있는 산자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산자락이면 위태로운 빙판길을 오르내릴 일도 없을 것이다. 내 한 몸 기댈 곳에 점을 찍고 지난 봄부터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아름드리 소나무 숲 속에 단칸집을 지을 터가 있었다. 제대로 배운 목수는 아니지만 아는 일꾼의 손을 빌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귀틀집을 어렵사리 지었다. 통나무로 켜켜이 쌓아올리고 그 틈을 진흙으로 발랐다. 단칸방이지만 좌우로 창문을 높이 내고 정면으로 밝은 들창도 달았다. 천정은 서까래가 드러나도록 높이고 지붕은 귀틀집에 어울리게 너와를 얹었다. 내가 이 집터를 선택한 이유는 뭣보다도 집 뒤에 묵은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산 아래 살던 다섯 집이 이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했다. 흙더미에 묻혀 있던 샘을 다시 파보았더니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솟았다. 물맛도 그만하고 수량도 넉넉해서 이제는 혹독한 추위에도 물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집 뒤로 한 30미터쯤 올라간 곳에 있는 이 고마운 샘에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급월정(汲月井)이라고 했다. 달을 길어 올리는 샘이란 뜻이다. 겨울철을 지내기 위해 지은 오두막이지만 나 혼자 살지 않고 해와 달과 함께 살자는 뜻에서 일월암(日月庵)이란 편액을 달았다. 밝은 집에서 밝게 살고자 한 염원에서다. 집 일을 하고 남은 헌 판자쪽이 있어 갑골 문자에서 해와 달을 빌리고 '집 암' 자는 찾을 수 없어 손수 간략하게 집의 형상을 그려 놓았다. 집 일 하던 일꾼이 무슨 글자인지 묻기에 '그림 글자'라고 일러 주며 함께 웃었다. 시절인연에 따라 겨울철에는 이 집에서 내 삶을 이어 가려고 한다. 그동안 쌓인 책을 지난여름 흩어 버린 것도 보다 간소하고 홀가분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한 수행자가 몸담아 사는 생활공간이 얼마만큼 최소화할 수 있는가를 나는 이 집에서 실험해 보고 싶다. 수행자에게 어떤 것이 본질적인 삶이고 무엇이 부수적인 삶인가를 순간순간 내 자신에게 물으려고 한다. 조선시대의 함허 득통선사는 이렇게 읊었다.
              진종일 일없이 앉았노라니 하늘이 꽃비를 뿌리는구나 내 생애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표주박 하나 벽 위에 걸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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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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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월광화 | 작성시간 19.11.29 산속 추위가 얼마나 혹독하고 거기다가 물까지 꽁꽁언 그 생활을 상상해 봅니다. 혼자 생활하기 싫어 해와 달과 함께 하신 일월암에서 방한칸의 단촐한 살림살이속에서 쓰신글 잘 보았습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답댓글 작성자햇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1.29 저런 혹독한 혼자만의 고독 속에서 좋은 글이 나오나 봅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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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종랑 | 작성시간 19.12.02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효암(孝菴) 박규택(公認 大法師) | 작성시간 22.01.25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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