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
(동학 설화소설) 제26화
불사조 조병갑 이야기
채길순_ 소설가, 명지전문대학교 교수
1
주막집 쪽문으로 내다 봬는 바다 가운데 멀리
고금도가 한낮 햇살 속에 가물거렸다. 아침 일찍
강진병영을 떠날 때는 간밤 내내 몰아치던 폭풍
끝자락이라 가랑비가 추적거렸으나 한나절이 지나
마량 항 주막에 들렀을 때는 날이 씻은 듯 개었다.
점심상이 들어왔지만 조병갑(趙秉甲)은 서글픈 심사에서인지 밥 수저를 들 생각도 않고 먼 바다에 눈을 주고 있었다. 바다를 덮은 하얀 햇살이 눈부셔서일까. 눈에 눈물이 배는가 싶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병갑이 소매를 가져다가 눈물을 훔쳐냈다.
“나리, 한 잔 드시지요. 마침 바다도 잔잔하게 잤습니다.”
벙거지를 쓰고 까치등거리를 입은 머릿나졸 김쌀문이 조병갑에게 술을 권했다. 이제 이 주막을 나서면 강진병영에서 나온 머릿사령에게 죄인을 넘기고 배가 고금도를 향해 떠나는 것으로 김쌀문의 소임이 끝나니 지금 이 술이 고별주인 셈이다.
“으흐흑!”
조병갑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김쌀문은 곤혹스러워져 며칠 동안 다듬지 못해 까칠해진 수염만 쓸어내렸다.
“내가 왜 저런 궁벽한 섬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나리의 분한 심정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머지않아 억울한 사연이 밝혀지면 해배(解配)되어 당상관에도 오르시겠지요.”
김쌀문은 그동안 조병갑의 억울한 사연을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들은 터라 비위를 맞춰줬다. 조병갑이 술잔을 들어 훌쩍 마셔버리더니 응석받이 아이가 울 듯 소매 깃이 젖도록 엉엉 울었다. 고별주 자리가 길어지니 한양에서 함께 내려온 나졸이나 강진병영에서 나온 감찰 사령들이 문밖에서 서성거렸다.
한양에서 떠날 때 의금부 도사가 김쌀문을 따로 불러 각별히 일렀다.
“중죄인이라지만 세도가의 비호를 받고 있는 자라 각별히 조심해야하네. 더구나 아직 호남 호서에 동학비류가 창궐하니 조병갑이라는 소문이 나면 척진 자들이 제 손으로 때려죽인다고 달려들지도 모르네.”
“명심하겠습니다.”
김쌀문이 내심 근심이 되었으나 별 탈 없이 여기까지 왔다.
지난 정월에 시작된 동학 난리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으로 시작되었다. 전라감사 김문현이 조병갑을 싸고돌아 사태를 키웠다. 조정에서 안핵사로 파견한 장흥부사 이용태가 군졸을 이끌고 고부에 들어가 군민을 잡아 죽이면서 일을 키워 난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김문현은 2월15일이 되어서야 조병갑을 파직시켜야 한다는 장계를 올렸다. 그러자 대신들은 임금에게 김문현도 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의금부에서는 지난 4월20일 전라감영으로 나졸을 보내 고부군수 조병갑 장흥부사 이용태를 한양으로 압송하여 투옥하였다. 연이어 전라감사 김문현, 전운사 조필영 등 부정부패에 연루된 관리가 260명에 이르렀다. 이마빡에 민비 편이라고 써 붙이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 민비 일족이었다. 민비는 반성은커녕 조정 신하들이 저를 음해하려 한다며 심사가 꼬여 있었다. 의금부에서 조사를 했지만 조병갑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입을 열지 않았다. 임금도 민비가 조병갑에게 1만 냥을 받고 고부군수로 내려 보낸 것을 알고 있으니 민비에게 불평삼아 말했다.
“조병갑이 말하기를 ‘처음 소란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문제 때문에 일어났고, 두 번째 난은 자기가 물러난 뒤의 일이라 모르는 일이라 모른다’고 말해놓고 입을 다물었답니다. 끝내 입을 열지 않으니 의금부에서도 혀를 내두르고 있답니다.”
임금은 민비가 죄를 줘야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조병갑에(의) 역성을 들었다.
“조병갑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도백이나 군백이 첫 번째 할 일이 세곡을 거두어들이는 일인데 어찌 허물이오?”
임금은 말을 괜히 꺼냈다고 후회했다. 의금부에서 올라온 대로 처리했다면 문제없을 것을,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 되어 쩝 입맛을 다셨다.
“그래, 저들이 조병갑이를 어쩌자고 합니까?”
“입을 열지 않으니 형틀을 갖춰서 심문을 하여 실정을 캐라고 할까 합니다.”
“서로 신역 고되게 할 게 아니라 아예 먼 섬으로 귀양을 보내버리고 말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소.”
임금은 민비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고, 괜찮은 방법이다 싶었다.
임금이 의금부에 엄명했다.
“조병갑이는 장죄(贓罪, 뇌물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학대한 일이 많고 많아서 남도의 소란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볍게 처벌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원악도에 안치하는 형전을 시행하여 당일로 압송하라!”
의금부에서는 조병갑의 유배 행거에 각별히 많은 사령에다 총으로 무장한 군졸까지 딸려서 여기까지 내려왔다. 전에 경상감사를 지내다 횡령죄로 경상도 칠곡으로 귀양 가는 임금의 6촌 형 이용직의 유배 함거도 이렇게 엄하지 않았다.
김쌀문이 조병갑이의 죄를 감해줄만한 세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조병갑이 입만 열면 하소연했다. 김쌀문이 그런 조병갑에게 측은한 심사가 들어 눈물을 글썽이자 마치 아이가 응석을 부리듯 눈물을 쏟으며 우니 난감했다. 김쌀문이 좀 망설이다가 그저 듣기 좋게 말했다.
“나리, 곧 풀려나실 것이니 너무 심려 마시지요.”
“그 말, 진정이지? 그래, 언제나 풀려날 것 같은가?”
또 듣기 좋은 말을 해줬다.
“찬바람 나기 전에는 풀려나시지 않을까요?”
이 말에 조병갑이 언제 울었느냐는 듯 온 얼굴에 웃음을 피우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되겠지?”
“꼭 나리가 마음잡수신 대로 될 것입니다.”
“내가 자네를 믿고 하는 말인데, 이것 좀 심상훈 대감께 전해 주게. 절대 누설을 해서는 아니 되네.”
조병갑이 밥상 옆으로 팔을 뻗어 김쌀문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김쌀문이 편지를 얼른 품에 넣었다. 그제야 조병갑은 밥수저를 들어 밥과 술을 빠르게 해치웠다. 술기운이 오르자 조병갑은 주고 받았던 말대로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술기운이 올라 바다뿐 아니라 온 세상이 하얗게 넘실댔다. (술기운이 오른 두 사람 눈에는 바다뿐 아니라 ....)
조병갑을 실은 배가 은비늘이 깔린 바다 한 가운데로 멀어져갔다.
2
그해 6월은 가뭄이 들고 내내 무더웠다. 청계천 물이 말라 빨랫감을 이고 먼 한강으로 나가야 했다.
김쌀문은 삼청동 심상훈 대감댁 대문 곁 행랑에서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나절이 되어가는 데도 소식이 없었다. 높은 가마에 오른 심 대감의 머리와 수염이 희어서 백운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쌀문은 은근히 켕기기도 했다. 편지를 표 나지 않게 뜯어보고 도로 봉하기는 했지만, 행여 시비할지 몰라서 ‘편지를 잃어버릴지 몰라서 봤노라’고 미리 말을 준비해뒀다. 그 편지에는 ‘궁전마마에게 일러 의금부 도사의 관직을 박탈해야한다’는 무서운 말이 들어 있었다. 한참을 더 기다렸을 때 하인이 와서 말했다.
“나리께서 편지를 가져오라고 하시니 이리 내어 보시우.”
하인 주제에 말이 좀 시건방져 보였지만, 김쌀문은 서찰을 내밀었다.
다시 한참 더 지나 그 하인이 돌아왔다.
“알았으니 그만 가보게.”
끝내 해라 투 말이 튀어나왔다. 김쌀문이 하인의 아래위를 훑어보자 하인이 툭 던져 말했다.
“왜 그렇게 꼰히 보는가?”
“어느 정승집 개가 짖기에 한번 본 것일세. 나 이만 가네.”
김쌀문이 툭 뱉자, 정승집 개가 바로 저인 줄 알아차린 하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할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김쌀문이 남대문을 나와 남지(南池)를 바른 짝에 끼고 칠패시장으로 들어섰다. 가뭄에도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왁작댔다. 벌써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니 풋것 장사꾼들은 떨이라고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장을 벗어나 뚜께 우물을 지나 풀무골은 같은 장이라도 좀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서소문 앞에서 흙다리와 반석방(盤石坊)으로 이어지는 주막거리는 사람들로 왁작댔다. 낮술에 취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고 저녁밥과 술을 새로 시작하는 패거리들의 목청이 높아갈 때였다.
“꺼져, 이눔아! 무슨 염치로 발걸음이여!”
왈패 주모의 욕지거리와 함께 사람이 튕겨 나오고 뒤이어 구정물이 뒤따라 나왔다.
“가뭄에 웬 물벼락이오?”
김쌀문이 허허 웃음을 달아 말했다. 욕바가지에 물벼락을 맞은 군졸 최형식이 머쓱해져 주모를 향해 허청 난 웃음 끝에 말했다.
“허허, 사람이 없다고 늘 없으라는 법이 있는가? 나도 한 몫 잡을 날이 있을 거니 기다리시게나. 허허허.”
“터진 주뎅이로 말을 잘 해요. 벌써 외상값이 몇 달째여.”
김쌀문이 끼어들었다.
“허! 조선의 군졸이 아낙에게 망신이라니!”
그제야 구정물 바가지를 든 아낙이 김쌀문을 알아보고 말했다.
“아니, 이게 누구여? 전날 망나니 똥쌀문이 아니여? 의금부 포졸로 들어갔다더니, 여기는 웬일이여? 지금도 포졸 잘 하구 있지?”
“말조심하게. 어엿이 김쌀문이여.”
최형식이 금방 당한 수모를 앙갚음 하 듯이 주모를 나무라 말했다.
김쌀문 최형식 두 사람이 봉놋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 고금도는 잘 다녀왔는가?”
김쌀문과 최형식이 말을 막 시작할 때 주모가 호호호 웃음을 앞세우고 다가왔다.
“그래, 포졸 나리, 뭘 드시려우?”
“도야지 비계 달린 삶은 고기 먹을 만큼 주시우. 외상이 얼마인지 모르나 내가 갚아 줄 테니 급료 못 받는 딱한 군졸 괄시나 하지 말게나.”
“그러고 보니 의금부는 사정이 좀 나은가 보우.”
“나라꼴이 엉망인데 어디 성한 데가 있겠소?”
주모가 술상을 들여왔는데, 상에 작은 도마와 삶은 돼지고기를 올려 조금씩 썰어서 김치와 함께 먹게 했다. 주모가 나가자 최형식이 말했다.
“그래, 조병갑은 얌전하게 유배를 받아들이던가?”
“웬걸. 억울하다고 펄펄뛰지. 심 대감에게 의금부 도사를 치자는 서찰 심부름을 시키더군.”
“의금부라고 가만 있겠나?”
“안그래도 의금부에서는 다시 조병갑의 부정축재를 들고 나오고, 대신들이 이를 문제 삼았다네. 이때마다 심순택은 허연 수염만 쓸고 앉았다네. 한마디라도 거들면 다 민비와 연결되는 일이니 입을 다물 수밖에 더 있겠나. 그나저나 연달아 사건이 벌어져 온 나라가 시끄러우니 조병갑이를 논할 겨를도 없겠지.”
“그래, 장차 어찌 되겠는가?”
최형식의 물음에 김쌀문이 몸을 앞으로 바짝 기울이고 말소리를 낮춰 말했다.
“전주성이 동학농민군에게 떨어지자 조정에서는 청나라에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네.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병했고, 일본도 곧바로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여 청일전쟁이 일어났네. 외국 군대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동학농민군은 조정과 서둘러 전주 화약을 맺고 동학농민군을 해산해 버렸다네.”
“장차 청일 전쟁은 어찌 되겠는가?”
“벌써 청군이 평양성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일본군은 요동 땅까지 점령했다네. 조정에서는 일본과 청나라에 철군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지난 6월12일 일본군 선발대가 들어오고 4천 명이 제물포로 들어와 벌써 지난 6월 23일 용산에 주둔하고 일부는 한양 도성으로 들어갔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끊고 앉아 안주만 씹고 있었다.
“그래, 자네는 앞으로 뭘 하려나?”
김쌀문의 물음에 최형식이 말소리를 낮춰 말했다.
“혼란한 틈에 성안의 동학도를 움직여 썩어버린 조정을 바꿔버려야지.”
“동학교도가 얼마나 되는가?”
“모르네. 일이 터지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네. 조정 대신을 처단할만한 숫자는 되네.”
“그러면 임금까지 바꾼단 말인가?”
최형식이 잔을 들어 벌컥 벌컥 마시고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바꾸려면 대가리까지 바꿔야지! 판을 만들어놓고 고금도로 가서 조병갑이를 처단해야지.”
“고금도까지 갈 것 없이 곧 한양으로 올라올 것이네.”
“그러면 더 좋은 일이고.”
이때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말발굽소리와 함께 다급한 군사들의 말이 이어졌다.
“군령이다! 모든 군사는 병영으로 들어가라! 군사는 병영으로 돌아가라!”
최형식이 얼른 벙거지를 집어 들며 말했다.
“급료도 못주는 군사, 그래도 쓸모가 있는 모양이로군. 나 들어가봐야겠네.”
최형식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 주막을 나갔다.
김쌀문이 주막을 나와 다시 칠패시장으로 나왔을 때는 섰을 때 어둠 속에서 일본군사들이 남대문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꼬리는 용산 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김쌀문이 다음날 아침에 진고개 집을 나와 남대문에 이르자 남대문 쪽에서 피난민들이 몰려나왔다. 어젯밤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김쌀문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서소문 밖 주막으로 달려갔다. 눈물 한방을 흘릴 것 같지 않던 억센 주모의 눈에 벌써 눈물이 흥건했다.
“무슨 일이오?”
“뭔 상 받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쪼르르 달려가더니, 저래 되어 나왔답니다.”
안방으로 들어가자 최형식이 누워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불을 맞기는 했지만 다행히 종아리 옆으로 스치는 바람에 살만 상했으니 쉬 아물 것이네.”
“다행일세. 이참에 아낙을 얻었으니 아주 안 좋은 일은 아닐세.”
김쌀문은 주막을 나섰다.
이제부터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한층 더 거세지리라고 예상했는데, 여전히 잠잠했다. 김쌀문은 가끔 조병갑에게 ‘해배 될 것’이라고 무심코 던진 말이 생각나기는 했지만, 해배 소식은 없었다.
대신 9월 18일 동학농민군이 재기포를 선언하여 이제 호남 호서 영남 영동 해서 지역으로 확산되어 조정은 일본군에게 동학농민군 토벌을 진정했고, 일본군은 본격적인 동학농민군 토벌에 나섰다.
이런 중에 최형식의 말대로 조선에서 ”동학당 한양성습격사건”이 일어났다. 10월 3일 흥선대원군의 적손 이준용을 앞세워 조정대신 중 김홍집 조희연 김가진 김학우 안경수 유길준 이윤용을 살해한 뒤 정부를 전복하고 왕위를 찬탈할 계획이었는데 도중에 기밀이 새는 바람에 전 법무아문 협판 김학우만 집에서 최형식 일당에 의해 살해됐다.
3
김쌀문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서소문밖 주막으로 달려갔다. 행여 최형식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달려갔지만 벌써 문이 닫혀 있었다. 옆 객주에 들어가 왜 가게 문이 닫혔느냐고 묻자 노인은 잠시 경계의 눈초리로 김쌀문을 훑어본 끝에 물었다.
“왜 그러시우?”
“그냥, 단골로 다니는 주막이라 구금해서요.”
“역적 집이라고 잡아 갔다우.”
그해는 추위가 일찍부터 찾아왔다. 혹독한 추위 속에 곳곳에서 동학농민군이 패했다는 소식과 동학두령들이 잡혀 죽거나 잡혀 올라와 전옥서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듬해 봄이 되자 조병갑 처벌이 다시 상신됐다. 1895년 3월12일, 총리대신 김홍집과 법무대신 서광범이 상신했다.
“지난 해 작년 호남 지방에서 일어난 비적의 소요는 조병갑의 탐학과 불법으로 인해 발생했는데 지금은 비적의 수괴가 잡혀와 조사 중에 있습니다. 고금도에 있는 죄인 조병갑을 관원을 보내 불러올려 다시 조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김쌀문이 다시 소환 함거를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죄인으로 소환인데 조병갑은 마치 죄수에서 풀려난 줄 알고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강진병영까지 올라와 기다리던 조병갑은 해배라도 된 양 싱글벙글 웃었다. 그렇다면 김쌀문이 모르게 전달된 편지가 있단 말인가.
“자네 덕분에 다시 보는군. 자네 노고를 잊지 않겠네. 자네가 장차 하고 싶은 일이 뭔가?”
전날 ‘찬바람 불 때’라는 말은 까맣게 잊은 듯했다. 김쌀문은 그저 지나가는 말이려니 여겨 스치듯이 말했다.
“칼을 휘두르던 망나니가 군졸을 하는데 더 바랄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저 칼 쓰는 망나니 말고 교형(絞刑)쟁이면 족합지요.”
이번 함거에 김쌀문이 꾀를 냈다. 이제 도처에서 일어났던 동학소요가 가라앉았으니 수레에 태우지 않고 말에 태워 빠르게 한양으로 올라와 남대문 밖에서 돼지우리 수레에 앉혀 도성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의금부로 들어간 조병갑은 넉 달이 미처 안 된 1895년 7월3일에 석방되었다. 조병갑뿐 아니라 민 씨 일파 죄인 모두 석방되었다.
4
1897년 12월10일. 조병갑은 법부대신 이범진 아래 민사국장에 임용 되어 고등재판소 판사로 재직했다. 사돈 심상훈은 탁지부대신이었고, 충청감사였던 조병식은 법부대신서리로 있었다.
대한제국의 판사로 화려하게 부활한 조병갑은 1898년 5월 29일 2세 교주 최시형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1898년 6월 2일 최시형 좌도난정율로 교수형 당했다. 김쌀문은 제 입으로 했던 말이 씨가 되어 새로 생긴 교형장이가 되어 최시형의 교형을 집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