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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의 본래 이름은 화엄불국사

작성자풀피리|작성시간26.06.07|조회수35 목록 댓글 1

불국사의 본래 이름은 '화엄불국사'이다.

불국사는 법화경의 영산정토를 나타내는 대웅전이 도량의 중심축을 이룬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법화경을 설법하는 석가여래와 설법을 증명하는 다보여래를 나타낸것이다.대웅전 하단에는 청운교와 백운교가 불세계로 오르는 장엄을 보여준다.
구품연지에서 피어나는 아침안개의 신비로움을 생각하며 자하문이란 편액을 걸었을 것이다.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구현한 극락전이 회랑을 따라 왼편으로 이어진다.

불국사가 건립되던 경덕왕대는 신라에 화엄사상과 정토신앙이 꽃을 피울 때였다.극락전하단에는 칠보교와 연화교의 아름다운 돌계단이 목조건축형태로 설계되었다.안양문은극락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아래 구품연지에는 연꽃이 피어나 극락의 향기를 전했다.자하문과 범영루.안양문의 누각과 회랑이 물에 비치는 용궁세계와 연화불국을 연출하였다.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전을 모신 화엄정토와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고 소원을 이뤄주는 자비의 어머니 관음보살을 모신 보타관음정토가 중단에 모셔져있다.

이렇게 세 개의 서로 다른 불국토를 한 공간 안에 표현하여 불보살의 정토세계를 한장소에서 참배하게 하였다.

이런 정신이 바로 화엄(華嚴)의 가르침이요 정토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화엄과 정토사상은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국사의 사격과 그당시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코드라고 볼수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설화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김대성의 창건 이야기이다.

모량리(牟梁里)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다.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하여 성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하였다. 집이 궁색하여 생활하기조차 어려워 부자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 그 집에서 준 약간의 밭으로 의식의 자료로 삼았다.

어느날 점개(漸開)라고 하는 스님이 탁발시주를 나왔다.흥륜사(興輪寺)에서 육륜회(六輪會)를 열고자 하니 좋은 인연을 맺어 복을 지으라고 시주를 권했다. 복안이 베 50필을 시주하니 점개 스님이 축문을 읽으며 축원하였다.

'단월께서 베풀기를 좋아하시니 천신(天神)께서 항상 지켜주소서. 하나의 보시로 만 배의 공덕을 얻고 삶이 안락하고 장수하소서'

대성이 이를 듣고 뛰어들어가 그 어머니께 말하였다.

'제가 문 밖에서 스님의 축원하시는 소리를 들으니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컨대 우리가 전생에 선한 일을 못했기에 지금 이렇게 가난한 것입니다.

지금 또 보시하지 않는다면 내세에는 더욱 가난하게 살 것입니다. 제가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보시하여 훗날의 과보를 도모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도 옳다고 하여 그 밭을 점개 스님에게 보시하였다. 그후 얼마 뒤에 대성이 죽었다. 그날 밤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의 외침이 있었다.

'모량리 대성이란 아이가 지금 너의 집에 태어날 것이다'

집안 사람들이 매우 놀라 사람을 시켜 모량리를 조사하게 하니 대성이 과연 죽었는데 그날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나던 때와 같았다.

김문량의 아내는 그 때에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왼손을 쥐고 펴지 않다가 7일만에 폈다. 손 안에 '대성'이라는 두 자를 새긴 금간자(金簡子)가 있었다. 이름을 대성이라고 하였으며 그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봉양하였다.

장성하자 대성은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 곰 한 마리를 잡고 산 밑 마을에서 잤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시비를 걸며 말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죽였느냐. 내가 도리어 너를 잡아먹겠다'

대성이 두려워 용서를 빌자 귀신은

'네가 나를 위하여 절을 세워줄 수 있겠느냐?'

대성은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를 한 후 꿈에서 깨어났는데 땀이 흘러 자리를 적실 정도였다. 이로부터 대성은 산에가서 사냥하는 것을 그만두고 살생하는 화살을 꺽어 버렸다.

화살로 곰을 잡은 자리에 곰을 위해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이로 인해 인과의 믿음이 생기고 마음에 자비심이 더욱 깊어졌다. 이에 현세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창건하였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신림(神琳)과 표훈(表訓) 두 성사를 청하여 각각 거주케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불국사와 석굴암은 살생의 업을 닦고 전세와 현세의 두 부모의공덕을 위해 건립한 것이다.

이상이 『삼국유사』 권5 「대성효 이세부모」조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 즉 석굴암을 짓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는 이 설화는 지금까지 불국사의 창건이야기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경덕왕대에 국력을 기울여 창건한 불국사와 석굴암이 김대성개인의 원찰처럼 소개된 것은 선대왕들과 혈통이 다른 원성왕대 부터 라고 한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왕실은 선대왕들이 전륜성왕의 덕행을 이룬 성왕으로 여겼다.경덕왕은 선왕 성덕왕을 추념하는 왕릉을 전륜성왕의 능처럼 장엄하였다.

신라는 과거칠불이 성도하고설법한 불국토이며 불.보살의 진신이 머무는 성소로 인식하였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진신이 계시고 보타산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이 금강산에는 법기보살의 법신이 깃든 성지로 여겼다.

그와 같은 신라 불국토의 전체적인 설계도가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진은 일제때 무너져가는 불국사와 방치된 석굴암의 모습이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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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硯泉(김정열) | 작성시간 26.06.07 불국사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불국사의 이름이 '화엄불국사'에서 '불국사'로 바뀌었다는 얘기와
    불국사의 창건자 김대성의 태생유래와 불국사 건립일화를 새롭게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좋은 글 그림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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