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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의 기원을 쓴 신단실기

작성자풀피리|작성시간26.06.18|조회수14 목록 댓글 1

신단실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신단실기는 대종교의 제2대 교주 무원 김교헌(金敎獻) 선생이 1914년에 저술한 역사교과서이다.

신단실기(神檀實記)는 일제강점기 단군 민족주의 역사학의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이 책은 당시 일제에 의해 왜곡되던 우리 상고사를 바로잡고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집필되었다.

주요 핵심 내용을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1. 단군조선 중심의 조선역사정립

​김교헌은 조선이 망한 원인이 상고사와 민족정신을 잃어버린 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단실기의 전반부는 철저하게 단군을 정점으로 하는 한민족의 정통성 확립에 집중한다.

​환인·환웅·단군의 삼신(三神)설

단군신화를 단순한 설화가 아닌, 환인(조판주-세상을 만듦), 환웅(교화주-가르침을 줌), 단군(치화주-다스림)이라는 삼신의 역사적 활동으로 체계화했다.

​부여·고구려 중심의 계승론

단군의 정통성이 부여 ➔ 고구려 ➔ 발해로 이어졌음을 강조했다.

특히 당시 사대주의 사학에 의해 한반도 중심으로 축소되던 역사 무대를 '만주 대륙'으로 넓혀, 만주가 배달민족의 고유한 영토임을 역사적으로 고증하려 노력했다.

​2. 신교(神敎)의 교리 및 철학 체계화

​대종교가 고대부터 내려온 '신교(단군교)'의 맥을 이은 정통 종교임을 선포하며, 그 철학적 깊이를 증명하는 내용을 담았다.

​성통광명(性通光明)·
재세이화(在世理化)

인간의 본성을 통하여 지혜광명에 이르고,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하늘의 이치로써 교화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의 핵심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의 해설

대종교의 핵심 경전인 삼일신고를 수록하고 이에 대한 주해를 달아, 우리 민족 고유의 신관(神觀)과 인간관을 정립했다.

​3. 역대 역사인물들의 단군 예찬 및 사료 수집

​자신만의 독단적인 주장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문인과 학자들이 단군을 기리고 예찬했던 시문(詩文), 상소문, 기록들을 방대하게 수집하여 수록했다.

​신단실기(神檀實記)라는 이름의 뜻

신단(神檀, 단군)에 관한 실제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라는 뜻이다.

문헌 고증을 통해 단군 역사의 역사적 실재성을 증명하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신단실기는 책을 넘어 '독립운동의 사상적 무기'로 변신하였다

​《신단실기》는 출간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 교과서 격으로 사용되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박은식의 《한국통사》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에게 거대한 영감을 주었다.
​특히 만주 지역 독립군들에게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며, 만주는 우리 조상의 땅이다.라는 강력한 민족 자긍심과 독립 투쟁의 당위성을 심어준 사상적 뼈대가 된 책이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국조 단군과 고조선의 옛 터전을 예찬한 대표적인 시들을 정리해 본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은 단군을 단순한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명을 열어준 동방의 성인이자 국가의 뿌리로 칭송하며 시를 남겼다.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기,

우리 민족의 독자성과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단군을 노래한 서사시들이 등장했다.

​이승휴, 《제왕운기(帝王韻紀)》 중 단군 역사의 기록 ​

"처음에 누가 나라를 열었는가 신령스러운 분이 있으니 이름이 단군일세

요임금과 같은 시대에 무진년에 나라를 세워

순임금을 지나 하·은·주 삼대까지 이어졌네"

단군을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명시하고, 중국의 신화적 성군인 요임금과 대등한 시기에 나라를 열었음을 한시로 풀어내어 민족적 대등함을 선포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단군을 우리 민족에게 예의와 문화를 가르쳐 준 성인으로 앙모했다. 특히 평양의 단군묘를 지나며 지은 시들이 많다.

​서거정, 《 단군묘를 지나며) ​

듣기로 태초에 단군께서 계시어 비로소 동방의 문명을 여셨다네 천년의 풍운은 거칠게 지나갔어도 사당 안의 영험함은 여전히 신령스럽네

​조선 초기 관학파를 대표하는 문인으로서, 우리 민족 문명의 시발점이 단군에게 있음을 찬양한 작품이다.

​허균, 《단군묘(檀君廟)》 ​

구름 속에 우뚝 솟은 사당이 영험한데 동방에 처음 나라 여신 거룩한 공덕이라

아득한 백성들 지금까지 덕을 입으니 서강의 흐르는 물 마르지 않으리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단군의 사당을 참배하며 지은 시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백성들의 마음속에 흐르는 단군의 은덕을 기렸다.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서 단군은 민족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구심점이었다.

특히 《신단실기》를 지은 김교헌이나 나철 등 대종교 선각자들은 신령스러운 찬가의 형태로 단군을 예찬했다.

​대종교의 《원찬가(願讚歌)》 및 《개천절 찬가》 ​

"아득한 옛날에 한배검(단군) 내리샤 우리를 기르시고 우리를 가르치셨네

배달의 자손들아 그 은혜 잊을쏘냐 동방의 밝은 빛 세계를 비추리

​정형화된 한시의 틀을 벗어나, 만주 제5지구 등지에서 독립군들이 목놓아 부르던 노래이다.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이어받아 반드시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다짐이 서려 있다.

무원 김교헌 선생은 《신단실기》 후반부에 위와 같은 역대 문인들의 단군 예찬 시와 제문(祭文)을 방대하게 수록했다.

이는 "우리가 단군을 기린 것은 최근의 종교적 운동이 아니라, 수천 년간 우리 선조들이 면면히 이어온 정통성 있는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한 고증의 일환이었다.

사진은 대종교의 2대교주 김교헌과 그가 펴낸 독립군들의 역사교과서 신단실기이다.
<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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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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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硯泉(김정열) | 작성시간 26.06.18 new 우리 민족의 뿌리를 잘 알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많은 오침에 시달렸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단군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
    좋은 글 그림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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