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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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줄여서 여윳돈 마련할까… 주택연금 들어 생활비 보탤까
이덕수 한화생명 상속연구소 부동산전문가 님의 스토리
• 1일 •
3분 읽음
은퇴를 앞둔 김모(64)씨는 지금 살고 있는 40평대 아파트를 처분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은퇴를 하고 나면 넓은 집을 유지하느라 들어가는 관리비와 난방비, 각종 수리비 부담이 커진다. 그렇다고 집을 팔자니 그간 오른 집값이 눈에 밟힌다. 김씨는 “지금 집에서는 병원이나 마트와 거리가 멀어 차를 이용해야 한다”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금 집에서 계속 살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최근 은퇴자들 사이에서 주거 재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주거 재편은 단순히 집 크기를 줄여 비용 부담을 더는 ‘다운사이징’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생활이 편리한 중소형 주택으로 옮길지, 아니면 주택연금에 가입해 노후에 대비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다.
특히 상당수 은퇴자는 보유한 자산의 대부분이 집이라는 점에서 은퇴 이후 주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노후 생활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진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국가데이터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했고, 2023년 기준 65세의 기대여명(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은 21.5년에 달했다.
집 줄여서 여윳돈 마련할까… 주택연금 들어 생활비 보탤까
◇큰 집, 자산이자 비용
자녀와 함께 사는 집과 부부만 사는 집은 다르다. 방 4개와 넓은 거실, 큰 주방은 가족이 함께 살 때는 장점이다. 하지만 자녀가 독립한 뒤에는 방 1~2개는 남는 공간이 된다. 이렇게 노는 공간도 청소를 해야 하고, 수리를 해야 한다. 그만큼 비용 부담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 평형 아파트는 관리비와 냉난방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물론 큰 아파트 가격이 더 많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집값 상승은 자산가치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오히려 재산세와 건강보험료 등 고정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은퇴 이후에 중요한 것은 집의 크기나 가격이 아니라 생활 편의성과 현금 흐름이다.
◇평수보다 생활권을 보자
은퇴 후 주거 전략의 핵심은 세 가지다. 생활권, 주거비, 그리고 보유 주택 활용이다. 우선 생활권은 은퇴 이후 주택 크기를 줄여나갈 때 우선 고려해야 할 요소다. 은퇴 전에는 직장 접근성이나 자녀 교육 환경이 중요하지만, 은퇴 후에는 병원, 약국, 대중교통, 마트, 공원 등 생활 기반 시설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따져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 반경은 좁아지기 때문에, 집 주변 500m~1㎞ 안에서 일상 생활이 가능한지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따라서 외곽의 넓은 아파트에서 도심 인근 중형 아파트로, 단독주택에서 엘리베이터를 갖춘 중소형 아파트로 이동하는 것은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생활 안정성을 높이는 선택이다. 엘리베이터, 경사도, 욕실 문턱 등도 따져봐야 한다. 반복적으로 부딪히는 작은 불편이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관리비와 세 부담도 따져야
두 번째 기준은 주거비다. 은퇴 후에는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현역일 때는 관리비 10만~20만원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은퇴하고 연금을 받아서 생활하게 되면 고정비가 조금만 늘어도 부담이 크게 다가온다.
은퇴 이후에는 관리비와 공과금, 재산세, 수선비 등을 모두 합쳐 ‘연간 주거비’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관리비가 적더라도 노후 주택을 유지·보수하느라 실제 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당장 세금이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연간 주거비 부담이 크다면 주택 규모와 보유 방식을 다시 점검할 필요도 있다.
◇집을 줄일지, 연금화할지 결정
세 번째 기준은 보유 주택의 활용 방식이다. 은퇴 후에는 의료비와 간병비, 배우자 생활비, 예상치 못한 이사 비용 등 다양한 자금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주택이 현금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노후 자금 운용에 애를 먹게 된다.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큰 집을 매각하고 관리하기 쉬운 중소형 주택으로 옮겨 생활비 여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또 주택을 유지하면서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병원과 교통, 생활 인프라 측면에서 만족스럽고 이사 부담이 크다면 주택연금을 고려할 만하다.
특히 최근에는 월 수령액이 늘고 초기 보증료 부담이 줄어드는 등 주택연금 활용 여건도 개선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주택연금 신규 신청자부터 월 수령액을 늘리고, 보증료율은 낮췄다. 또 질병 치료나 자녀 봉양, 노인 주거 복지 시설 입주 등 불가피한 사유로 주택에 계속 거주하지 않을 경우에도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주택연금이 모든 은퇴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집값 상승 기대가 크거나 자녀에게 주택을 물려줄 계획이 있다면 가족 간에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은퇴 후 주거를 선택할 때는 장차 부부 중 한 사람이 홀로 남았을 때도 관리와 이동이 가능한 집인지 살펴봐야 한다. 집값은 올랐지만 생활비가 빠듯하고, 관리비와 세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병원과 생활시설 이용이 불편하다면 주거 전략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거 재편은 삶을 줄이는 선택이 아니다. 생활권을 개선하고, 보유 비용을 낮추며, 필요할 때 현금화하거나 연금화할 수 있는 자산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