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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雲之夢1893~1911

내가 독립사상을 가진 것은 서택환 씨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런 것은 우리 고모 덕택이여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내(金明煥(本名) 金曉明(法名) 金聽聲(佛名) 無耘, 憐觀(金錣洙作名)가 물었다..

"서택환 선생께서 구례군수 외에 벼슬하신 적은 없나요?"

초봉(初峰 지운) 김철수(金錣洙) 선생께서 말씀하시었다.

"잘 모르겠어 어려서 알았음께, 동네에서 서구례(徐求禮)라고 했어 구례군수를 하고 글 잘해서 나갔다가 석 달 만에 아버지가 죽응께 고향에 와버렸어 다 내버리고 정리하고 와서 아버지 묘에 집례해 가지고 꼭 3년을 잘 지키다가 무릎 끓고 글이나 보고 꼭 그러다가 돌아가셨어 돌아가시도록 까지 무릎 끓고 학생태도로 그렇게 했어'

내(金明煥(本名) 金曉明(法名) 金聽聲(佛名) 無耘, 憐觀(金錣洙作名)가 물었다.

'서택환 선생께서 동네 친척들한테 욕을 많이 덛어 먹고 친척 친구들이 내왕도 안 했다는 데 그 부분을 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게 내가 독립사상을 가진 것은 서택환 씨고, 동냥아치 밥 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런 것은 우리 고모님이 동냥아치가 오면 나를 업고 "동냥주어라" 한 것이 요것이 기본이 된 것 같어

내가 소지주 집에서 태어나 호강스럽게 커가지고 왜? 자꾸 죽을 땅에 들어갈까라고 가끔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서택환 씨 독립사상하고 고모 덕택인 것 같어"

내(金明煥(本名) 金曉明(法名) 金聽聲(佛名) 無耘, 憐觀(金錣洙作名)가 물었다.

"서택환선생의 자손은 있습니까?"

"없어, 그 어른이 죽은 뒤에 가난허인게 손자도 일찍 죽어버리고 시방 양손 하나가 있어도 뭐가 있겠어 그 어른이 죽었는데 그 근방 인물이여 그게 글 잘하고 글씨 잘 쓰고 풍채 좋고 행실이 좋았는데 조그마한 돌 말뚝 하나를 묘 앞에 못 박고 있었어"

내(金明煥(本名) 金曉明(法名) 金聽聲(佛名) 無耘, 憐觀(金錣洙作名)가 물었다.

"서택환 선생께서 선생님에게 하신 말씀이 많았습니까/"

"많았어 그것이 내가 열 네 살 먹어서부텀 그 어른에게 댕겼지만 열일곱 살 먹을 적에 동네에 서(徐) 씨 들이 많이 사는데, 서당같이 앉혀 놓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 여기서 일러주고 신 교육받은 선생 데려다 시켰어, 그렇게 자기 친구들이 욕을 막 허고 학자들이 그 집에 댕기는 사람들이 내내 안 댕기고 그랬어 그래도 탄연 하게 "다 모른 게 그러지 학교를 다녀서 세계형편을 알아야 독립운동을 하제 시방 나라가 다 망했는데 뭣도 모르고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랬어

초봉(初峰 지운) 김철수(金錣洙) 선생께서 말씀하시었다.

"농촌에 살고 있으니 국내의 형편을 알 턱이 없지, 내가 아마도 생각해 본께 서택환선생은 우리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안 것 같아,

내가 열여덟 살에 한일합병되지 않았어?, 그러니 합병되기 2~3년 전에 '나라가 망한다 너희들이 커서 독립운동을 하려면 한문만 배우지 말고 학교 가라'는 등의 말씀을 많이 했지, 그리고 그 어른이 구례 군수직을 헌신짝 모양 내버리고 고향에 온 것을 보면 일본과 합병한 나라가 된 것 같아 벼슬은 하기 싫은 게 물러 났을 거 아니여"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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