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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너의 아버지(金在鳳)가 신사상연구회 회원인가? 라고 물으시었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내가 14살에 부산 해운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기위해 담임선생께서 준비해오라는 서류를 가지고 갔었는데 담임선생께서 물으시기를 "이상준(李相俊)씨가 너의 아부지 맞나?" 예 맞습니다 저의 아버지입니다 라고 하니

담임선생께서 너의 아버지가 맞다면 너는 왜 감(金)가인가?"라고 하니 함께 교실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웃었다.

나는 창피해서 그냘부터 고민하였다.그래서 누나와 형님도 나이가 들면서 집을 떠났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가출할까 고민하다가

우리반에서 공부잘하는 학생 몇사람만 부산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냈으니 그냥 모른체하고 시험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내가 부산중학교에 7등으로 붙었는데 그 뒤에 어떤일이있었는지 불합격이라고 해서 못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1차 로 시험본 학교는 기간이 지나 마감되었고 2차로 시험보라고 형님께서 준비해서 부산 범냇골 동성중학교에 시험쳐서 들어갔다

국민학교 같은 동창생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갔는데 나는 똥통2차 시험보아 들어간 꼴이다.

그 때 참 챙피하였다.

처음 국민학교는 부산에서 변두리 해운대 국민학교인데 중학교는 교복 입고 모자를 쓰는 중학교라 모자에 붙은 동으로 만든 가운데 중(中)자만 보아도 어느 학교인지 아는 것이라 아는 사람앞에서는 모자도 벗어들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더 이상 자존심이 헐학되지않아 서울로 가출할 결심으로 부산역에서는 기차타기가 어렵고 해서 부산 변두리인 구포역에서 완행열차에 올라 가출을 하였다.

대전 못미처 영동역에서 차장한테 걸려 영동역에 인계되어 한나절 역사주면의 풀 뽑기를 하고는 풀려났다.

그리고 남쪽으로 오다가 거창 팔현 김득수 선생을 만나 지내다가 선생께서 작고 하시면서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구례화엄사에 가서 주지에게 내가 말한 것을 알리고 그 곳에서 살거라" 하셨다

몇년살다가 너무 적적하고 서울이 궁금해서 주지스님께 말씀드리고 서울로 가가게 되었다.

화엄사 주지스님께서 돈도 두툼히 주시면서 서울살다가 힘들면 다시오거라 "하시면서 나를 전송하셨다.

서울에서 사장이 단종면허를 가지고 도급받은 아파트공사 현장에서 비계공으로 일하였다.

서울에서 인구분산정책으로 암사동에 처음 시영아파트를 짓던 때고 다음해에는 성남으로 아파트공사현장으로 갔다.

막노동 공사현장에는 나의 체질에 맞지않아 다시 구례화엄사로 내려갈려고 전라선 완행열차를 탄는데 나의 자석앞에 앉으신 분과 대화하면서 그분이 책임자로 있는 국립전라북도 잠종장과 잠업시험장에서 강의를 하시는 오주임이라는 분이셨 고 그분이 원불교 덕진교당교도였는데 그분이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라는 곳에 원불교 은산육영재단 수계과목장에 뽕밭을 8천평 시법포를 만들어 관리하시면서 가끔 나를 데리고 그 곳에갔는데 그 곳에서 학생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것을 보고는 나도 그곳에서 공부할 기회를 허락받고 3년을 근무하니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원광대학교에는 못가고 원불교 영산선학대학 전신인 동산선원에 입학하고 그 뒤 원불교 교역자 시험을 보고는 교무가 되었다.

수계 과목장에서 동산선원에 입학원서를 낼 때 부모의 승락서를 받아오라해서 내가 가출한지 7년만에 부산 해운대로 가서 어머님을 만나 서류를 받을 때 어머님께서 나의 주소를 기록하였다가 대구에 사는 진보당원인 아버지 친구에게 나를 알아봐달라고 하던차 마침 초봉 김철수선생께서 빚으로 모든 가산이 남의 소유로 넘어가고 원천리에서 서남쪽으로 도보 40분거리 수성리라는 곳 선생의 선산에 토담집을 짓고 아사가는 날이라 대구에서 오신 4명의 진보당원과 함께 처음으로 김철수선생님을 뵙게 도었다.

여러가기 묻고 답하는가운데 초봉 김철수선생께서 물으시었다.

"너의 아비지 김재봉선생이 신사상연구회원인가?"

저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집을나와 아버지 얼굴도 모릅니다 라고 대답하니

김철수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조선공산당 세울적에 책임비서를 하셨으니 처음 조선공산당 만들적에 모두들 화요회파에서 만들었으니 화요회가 그 전에 신사상연구회거든 아마 내가 군산 금오학교 다닐 때 우리보다 나이가 7~8살 많은 홍명회씨가 우리아버지께서 마을 서당선생 송병영시를 데려다 미곡상과 하숙집을 운영할 때 그 곳에서 처음으로 김성수 백관수 송진우에게 '너거들 여기 있지말고 일본와서 공부하라' 할 때 알은 홍명회선생도 신사상연구회에 가담했으니 나이로 보아 너의 아버지도 화요회 이전 단체인 신사상연구회 회원이였으꺼야 " 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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