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3년 전쯤 된듯하다.
나보다 6살 위인 12살 누나의 손을 잡고 부산에서 배고파 고향을 찾아갈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겨울이라 어린 나이에 춥고 배고픈데 누나의 말 따라 "외갓집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다" 란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국사를 하시다가 행방불명이고, 어머니는 재가를 해야 목숨이라도 살린다고 진영군수(그 당시에는 진영 군도 있었음)를 하던 큰 외삼촌께서 호적계와 짜고 박복선(朴卜仙) 이름은 그대로 두고, 없는 이름을 하나 만들어 박복순(朴福順)으로 만들었다.
이 일은 나의 이복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호적등본을 떼러 고향 진영에 가서 보니 실제 어머니의 이름과 외가와는 무관하게 나와 항의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뒤에 외가댁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어머니가 비록 재가를 하셨더라도 돌아가시면 우리 쪽인 본댁으로 와야 한다는 전례에 맞추기 위해 그렇게 해 놓았다고 들었다.
나의 어머니는 재가하신 뒤로 우리를 버렸는지?, 아니면 잠깐 외가댁에 가 있어라고 했는지? 누나만 알지 나는 어려서 모른다.
그 뒤에도 어머니께서 한 많은 세상을 살으셨다
이름도 박복선 박복순 이동렬 박지명 박명덕 이름이 다섯 개나 된 것을 보니 그 당시 연좌제에 걸리면 살아남기 위해 그런 것인지, 이름이 많은 것 보니 한 많은 세상사를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겨울이라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진영 역에 내려서 언덕으로 많은 계단을 올라간 기억은 난다.
커 나서 가보니 진영역은 좁은 땅을 이용한 언덕아래에 있는 관계로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버스가 다니는 넓지 않은 길이 나온다.
한 켤레인 장갑을 누나와 나누어 끼고 장갑이 없는 손은 주머니에 넣고 10리를 걸어가야 한다.
나 혼자 자유롭게 걸어가지 못한 듯 하니 미루어 계산하니 73 년쯤 내 나이 6살인듯하다.
가면서 누나가 말하였다 "너희 형 명이는 영리하고 동작이 빨라 토끼 뿌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셨다.
지금도 살아 계시지만 내가 강원도 낙산으로 귀농한 23년 전에 새벽에 한번 찾아오셔서 "얼굴만 보고 간다"라고 해서 겨우 붙잡고 아내가 저녁밥 남은 것을 끓여 대접하고 헤어진 후로 지금도 어디에서 사는지는 모른다.
갈 길은 멀다 어둡기 전까지 가야 하는데 진영에서 출발하면 읍내를 지나면 如來里 다음이 新龍里 다음이 설창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내가 태어난 內龍里로 기억하는데 현재 지도검색을 해보니 진영역에서 보면 내 기억과는 모두 거꾸로 되어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인 내룡리로 들어가려면 설창사거리에서 서쪽으로 들어가야 하고 남쪽으로 설창 언덕으로 난 국도를 넘어가면 김해읍이 나오는데 지도상에는 진영역 부근이 바로 설창리로 나오고 진영읍내를 진입해서 신용리로 가려면 여래리의 언덕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지도상에는 여래리가 아주 멀리 신용리와 내가 태어난 내룡리 너머에 나와 있다, 내 기억이 틀린 거겠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외가는 신용리이고 친가는 내룡리다.
여래리를 지나면서 누나가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저 가수원이 우리 꺼고 저 집이 우리 집인데 뺏겨버렸어..."
쳐다보니 학교같이 제법 기다란 큰 건물이었다
내가 커나서 가보니 그 당시에는 'ㅇㅇ요양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다음이 신용리라 외갓집에 당도하니 큰 외삼촌은 결혼을 하였고 그 아래로 큰 이모, 종구, 종필, 종대, 막내이모인 말순이모가 살고 계셨다. 막내 이모인 말순 이모는 누나와 12살 동갑이다.
나의 어머니는 큰 외삼촌 누나이며 외가에서 가장 맞이다.
큰외삼촌께서 나의 누나에게 "내룡리는 가지 말거라 너희 아버지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는기라" 하셨다.
모두 다 반갑게는 맞아 주시는데 내 기억으로는 큰 외삼촌이 우리를 싫어하는 듯했다.
그럴 것이 큰 외삼촌은 진영군수를 하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 당시 좌익 중에서도 경상남북도당 위원장을 하셨으니 당연히 싫어하셨겠지
그래서 누나는 나의 손을 이끌고 외할아버지께서 진주 촉석루를 비롯해서 한옥을 짓고 수리하실 때 도편수로 지내실 적에 작귀로 나무를 쪼았다가 간솔이 튀어 한쪽 눈을 실명하시고는 모든 재산을 큰아들에게 주고는 스님같이 선산에 한옥을 지으시고 외할머니와 함께 사셨다.
내가 보기에도 큰 외삼촌은 엄하셨고 무서웟다 그래서 누나도 "선산 재실로 가자" 하셨다.
멀지는 않지만 부지런히 가야 어둡기 전에 당도할 수 있는 들판길과 산길을 가야 한다.
"환아, 배고프지?, 외할머니 댁에 가서 밥 먹자" 하셨다.
잠심과 저녁을 먹지 않아서 무척 배가 고픈 기억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