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공작창에서 농막(범내골)으로 숨어 이사 온 뒤로는 나에게는 볼거리 놀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지금이야 범내골하면 지하철역도 생기고 고층건물이 즐비하지만 그 당시에는 큰 강변으로 뚝을 막은 높은 곳으로만 판잣집과 하꼬방(종이 박스로 지은 집)이 줄지어 지어졌고 대부분 개울가 뚝방길 주위에는 갈대밭도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국가땅이라 육이오사변 때 피난민들과 못사는 사람들이 임시로 숙소를 지어 살기 시작했다.
우리 형제는 날마다 밥만 먹으면 주위의 생활환경과 또래의 아이들이 비슷해서 근방 친구가 되었다.
강에서 주로 놀았는데 그래도 우리는 그동안 철도 공작창에서 살았고 어머니께서 번 돈으로 꿈같은 세월을 살았는데 그러니 또래보다 입은 옷이 좋았고 굶지는 않고 살았다.
어머니는 가끔 집을 나가셔서 며칠씩 오시지 않으셨다 아마 아버지를 만나신것 같았다.
하루는 어머니는 문을 잠그고 우리를 데리고 '서대신동'으로 도피하고 다시 '하단'이라는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옮겨 살다가 다시 '농막(범내골)'의 우리 집으로 왔다.
그런데 집을 오래 비운 탓에 도둑이 들어 물건과 사진이 든 박스까지 가져가버렸다.
이러 한 연유를 모르고 나는 어려서 그냥 어머니와 누나가 시키는 데로 살았다.
몇 달이 지난 것 같은데 어느 아저씨가 한분 집에 오셨다.
아저씨는 어머니와 상의하고는 어머니는 나에게 "너의 아버지가 보낸 친구인데 아저씨 집에 가서 있으란다 그러면 금방 데리러 갈 거야" 하셔서 버스를 타고 갔는데 진주 도솔사 절에 맡겨졌다.
도솔사 주지는 아버지 지인으로 식민지 시절에 독립운동 자금을 데신 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저씨가 다시 나를 경상도에 있으면 잡혀간다고 먼 전라도 구례 화엄사로 보내졌다.
여기서도 오래 산 것 같은데 다시 아저씨는 " 아버지께서 체포되어서 이제는 집에 가도 괜찮다"고 하면서 나를 농막(범내골) 어머니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집에 와 보니 나를 본 어머니는 나를 안고 우셨다. 누나가 다음날 나에게 "아버지께서 잡혀가셨다"라고 하였다.
뒤에 커서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아버지와 함께 서대신동 하단 그리고 여기 저기 피해다녔는데 하루는 범일동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다가 아버지께서 나보고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라 하고는 어디론가 뛰어가셨는데 한참 지나서 기다리는 건널목 건너편을 보니까 아버지께서 얼굴이 하야케 변해갖고 서 있는데 옆에 두 사람이 아버지 팔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눈을 껌뻑거리면서 고개를 흔들어서 내 눈짐작으로 모른 체 하라는 뜻으로 하길래 그냥 옆으로 지나간 후로 너거 아버지 행방을 몰랐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그 당시 부산진 역에서 서북쪽 산을 보면 사상범을 가두는 형무소가 있는데 지금의 경남여고가 있던 자린기라 그곳에서 복역하던 사람이 석방되면서 나를 찾아왔어 하는 말이 '당신 남편과 한방에 있었는데 몇 번 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초죽음이 되어 왔는데 한번은 당신 남편이 나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사정하면서 어디 어디 찾아가면 내 아내와 아이들이 살고 있을 것이요 아내는 어떤말을 해고 믿지 않으실 것 같으니 내 모자를 주면 믿을 것이라면서 나는 내일 나가면 이 곳에 다시 못 올 것이요"라고 하셨다면서 농막(범내골)으로 찿아 오셔서 알려 주시고 가셨다." 하시면서 "그 때 너의 아버지가 세상버린거라' 하시고는 또 우셨다
*아래 사진은 유튜브에서 펌한 사진인데 우리가 살던 부산 철도 공작창 주위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