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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 기억 8, 어머니는 아버지 사망 소식 들으러 친구 분이 계신 철도 공작창을 찿아 갔다가 결국 해운대로 이사하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우리 삼 남매와 살아갈 길이 막막하신지 가끔 일손을 놓고 하늘만 처다 보고 울먹이기도 하시고,

아버지께서 정말로 돌아가셨는지? 궁금하여 아버지 친구가 철도 공작창 높은 분으로 계시므로 그곳에 몇 차례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하여 답답해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께서 "해운대로 이사 가야 할 것 같다"라고 하셨다

누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철도공작창에 아버지 친구 만나러 가셨다가 못 만나고 박 씨 아저씨를 만났는데 철도공작창에서 어머니께서 밥을 해드린 기술자 몇 분이 해운대 좌동에 대동공업이라는 곳에 기술자로 가게 되어 그곳으로 따라가게 되었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에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아버지 따라 고향에서 피신해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시다가 혼자 되셨으니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어머니는 그동안 살든 농막(범내골)의 집을 헐값에 팔았는데 잔금은 뒤에 받기로 하고 박 씨 아저씨가 적어준 주소를 가지고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동래를 거쳐 해운대에 도착했다.

그 당시에는 부산 해운대가 아니고 동래 해운대라고 불렀다. 해운대를 가려면 반드시 동래를 거쳐야 하는데 기차 아니면 버스를 갈아타야 하던 때다.

그리고 동래와 해운대는 비포장길이라 먼지도 많이 나고 흔들리기도 많이 해서 멀미는 물론이고 승객들이 하얀 먼지를 덮어쓴 것을 보면 말할 때 하얀 이빨이 보이는 것이 아프리카 사람과 같았다.

우리는 해운대 버스정류장에 내려 물어 물어 동쪽 온천장을 거치고 미포라는 동네를 거치고 언덕을 올라 좌동이라는 푯말이 붙은 동네를 가니 대동공업이라는 간핀이 보였다.

그 당시 1953년 내 나이 7살이던 해에 해운대 좌동 골짜기에서 본 대동공업이라는 곳은 육이오 사변 때 망가진 차량이 수영에서 동래 원동교 사이 들판에 2~3층으로 차량을 쌓아 미군들이 지키고 보관하던 것을 가져다 고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쟁에 사용할 무기 중에 포탄은 미국에서 가져와서 동백섬과 운천천이 맞닿는 곳에 항구를 만들어 가끔 엘에스티(LST)라는 큰 배에 싣고와서 좌동 골짜기에 여러 수백 개의 반지하 지붕을 만들어 보관하고 총알은 해운대 뒷산 넘어 조병창에서 만들고, 차량은 대동공업에서 만든다고 들었다.

그래서 무기 만드는 것을 염탐하러 온 흔히 우리가 말하는 빨갱이들이 잡혀 죽임을 당하고 철조망에 그들의 귀를 잘라 걸어둔 것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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