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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 기억 12, 해운대 운촌으로 이사하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해운대 좌동 언덕배기에 있는 대동공업에서 식당 보조로 일하는 수입보다 새로 만드는 수영비행장에 노무자로 나무에 못 빼러 가서 일하는 수입과 동백섬 항구로 미국에서 포탄과 전쟁무기를 엘씨티(LCT) 배로 싣고 와 하역하는 한국 노무자 한테 밥 하러 가거나 노무자로 일하는 수입이 몇 배가 되던 것을 어머니는 아시고

해운대에서 포탄 하역하는 동백섬 항구와 수영비행장과 가장 가까운 '운촌'이란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곳 위치가 동백섬 앞이라 언제든지 물 안경 챙겨가면 소라 전복 멍게 군소 곰피 미역 성게 해삼을 언제든지 잡아올 수 있어 좋았고,

운촌천이 바다와 맞닿는 곳에는 신기(이끼파래)라는 것이 돌에 많이 붙어있어 부엌에서 잠깐나가 뜯어와서 마늘과 식초만 넣어도 입안에서 싸한 바다냄새가 뭉클하게 나서 입맛이 좋았고,

가끔 얕은 강 까지 숭어 떼( (그때는 모찌라고 함)가 올라오는 날이면 온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강에 뛰어들어 작대기로 물을 쳐서 잠깐 멍한 숭어를 손으로 잡던 추억이 있어 좋았고,

동백섬 항만이 바로 코앞이라 바다에 잠긴 콘크리트벽사이에 참게가 많아 수놈은 삶아 먹고 암놈은 게장 만들면 여름에도 밥 한 그릇은 뚝딱해서 좋았고,

항만에 포탄하역작업 때 일부러 떨어트린 탄약 자멱질해서 총알 화약 빼고 탄피 팔아 잡비 써서 좋았고

간식 없어도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가마니 깔고 멸치 말리면 빨간색 띤 작은 오징어 줒어 먹어도 아무도 말 안 해서 좋았고,

주위 갈대연못에 삼각형 뾰쪽한 말밤 익으면 장대질해서 삶아 먹어서 좋았고

우리집 뒤 판자울타리만 벌려 나가면 일본인이 살다 간 잘 정리된 연못이 있어 연못주위에 심어진 이찌지꾸(무화과)를 늦여름부터 잘 익은 것만 골라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어 좋았고

그곳 연못에는 아무도 잡지 않는 재첩도 뒷판자 담장만 나가면 큰 연못이 4곳이나 있어 만조 때에는 바닷물이 유입되어 엄지손가락만 한 재첩으로 반찬이 없을 때는 재첩에다 정구지(부추)만 넣어도 맛있고 개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으며,

운촌에서 동백섬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있어 다리 위에 장난치며 낚시로 '꼬시래기' 잡아 썰지 않고 칼 뒤편으로 걸래같이 털털 털어 초장 쳐서 먹던 추억도 좋았고,

바닷가에 정박해 놓은 적은 배는 언제든지 어른들에게 말만 하면 "바람불 땐 깊은 바다에는 나가지 마라"하며 허락하기에 먼 친지들이 오는 날에는 배 노 저어 동백섬도 한 바퀴 돌아오는 재미도 좋았고,

해운대에서 패싸움 나도 운촌사람 중에 식민지시절부터 주먹으로 유명한 '유지로' '씽가' '요오짱' 아저씨가 있어 언제나 방패 역할로 덤비지 않아 좋았고

운촌동네는 누나친구들이 많아 '아이꼬' '수미꼬' '요이꼬' 하며 부르기도 좋은 일본이름도 신기해서 좋았고,

개울 건너 미군부대가 있어 울타리에 쳐진 철조망을 한 바퀴 돌면 가끔씩 찌그러졌지만 상하지 않은 통조림도 주워다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늦잠 자다가 통학기차 타기 늦어도 청사포로 돌아올 때 기적소리는 항상 울리니 뛰어가면 겨우 탈 수 있어 좋았고,

통학비 털어 영화 보고 무임승차로 해운대역에 내리지 않고 기차 가장 꼬리 부분에 타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기차에서 재끼기(뛰어내리는 기술)하면 바로 운촌이라 폼 잡고 유히 걸어가면 친구들 와!, 하는 고함소리에 뒤통수가 시원할 정도로 어깨가 머쓱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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