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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 기억 13, 강 건너 미군 부대 울타리를 한 바퀴 돌면 찌거러진 통조림도 주워 오고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1953년 내 나이 7살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습니다.

잘 사는 집에서도 보리를 듬뿍 넣은 보리밥을 먹을 정도였으니

가난한 집에서는 밀기율 죽이나 보리 갈아 끓인 죽

또는 구호물자로 가축 먹이라고 질 나쁜 밀가루를 구해와서 수제비를 많이 해서 먹었습니다.

보리를 맷돌에 갈아 죽을 끓이면 적은 보리쌀로 많은 식구가 먹을 수 있었습니다.

보리죽이 목구명으로 넘어갈 때 목이 보리껍질에 닿아 깔깔하였지만 구수한 맛이 그때는 일품이었습니다.

"보리 죽을 아홉 그릇이나 먹고도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면서 하는 말이 죽은 죽이로구나 끈기가 없어 잘 넘어진다"라고 농담도 우시게 삼아 많이 했고요

부엌 기둥에 매단 대나무 소쿠리 속에 보리 쌂아 보관한 보리밥 덩어리를 표 나지 않게 가끔 잘라먹고 혼나기도 했습니다.

보리쌀은 잘 익지 않아 두 번 삶아서 밥을 짓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배가 고프면 황토 언덕배기에 먹는 황토흙도 우리는 많이도 먹었습니다.

그 먹는 황토흙을 그때 부르기는 <쫀대> 또는 <쫀대흙>이라고 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황토언덕을 잘 살피면 밀가루같이 쫀덕 쫀덕 하면서 모래도 씹히지 않은 흙이 골 따라 뭉쳐있는 것을 파먹었습니다.

​날마다 가게되는 미군부대 펜스 철조망 울타리를 한 바퀴 돌면 쓰레기장에서 울타리 밖으로 던져진 비록 통조림 깡통이 차량에 밟혀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터지지 않은 큼직한 사각의 햄통을 줍는 날이면 그날은 우리 식구 모두 포식을 하는 날이며 횡재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과자라고는 <말똥과자>라고 흑설탕을 녹여 호두과자 크기의 사탕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똥과자>는 잘 사는 집안의 자식들이나 사 먹지 우리는 엄두도 못 냈습니다.

기껏해야 신문지를 몇 장 가져가면 주는 칡줄기를 30cm 정도 자른 것을 바꿔먹는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칡넝쿨을 끊어와 아이들에게 파는 아저씨들도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이야기였습니다.

아~!, 그 때 머니머니 해도 못 먹고 배고픈 시절, 배고픈 서름보다 더 한 것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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