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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 기억 14, 운촌 - 승당 - 수영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길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내가 살았던 1953년 내 나이 7살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못 먹고 못살았다.

그래도 옛말에 "천석 군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다"는 말과 같이 우리는 고향에서 부산으로 나오면서 가져온 돈과 일본에서 함께 유학한 아버지 친구가 부산철도공작창에서 높은 분이라 구내직원식당을 운영하면서 번 돈과 해운대로 이사 와서 대동공업에서 식당에 근무하면서 먹는 것은 호의호식은 아니더라도 그리 크게 굼거나 하지는 않았다.

운촌으로 이사와서는 집 앞에 있는 미군부대는 동백섬 항구에 미국에서 들어오는 무기 탄약을 하역하므로 있었고, 좌동 골짜기에는 포탄과 무기를 저장한 곳을 지키기 위해 미군이 주둔하였는데 뒤에 우리나라 군부대로 되었다.

수영비행장은 식민지 시절부터 조그마한 비행장이 있었는데 부산에는 김해공항이 생겨 옮기기 전에는 유일한 비행장이라 미군들이 확장해서 국제공항으로 발전시켰다고 들었다

수비사거리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도로는 해변도로이고 바로 배행장 활주로 처음이라 차량은 다니지 않았는데 뒤에 민락으로 이어지는 강에 다리를 만들고 도로를 내고 그곳으로 해서 부산으로 바로 가는 길이 생기고는 동래로 가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비행장 앞 모래사장과 민락교가 있는 그 곳 끝자락 강가에는 소나무 숲과 미군별장이 있었으며 내가 듣기로는 그곳을 비치클럽이라고 하였다.

수비사거리에는 제법 근사한 집들이 들어서고 술집도 생기고 그곳에서 산 쪽으로 가면 큰 바위가 많은데 그곳에는 무당들과 점치는 집들도 있었다

어머니는 가끔 신당절에 다니시고 점 보러 가시는데 따라가기도 하였다

비행장 앞 수비사거리에는 미국에서 짐승먹이라고 통밀을 거칠게 간 밀가루와 변해버린 밀을 쪄서 말린 것과 옥수수를 잘게 가루 낸 것을 원조하였는데 그 당시 돈 있는 사람이 허가 내어 수영에 가면 많이 쟁겨놓고 판매를 하는 곳이 있었다.

1954년 내 나이 8살 때 가난한 시절이라 나와 형님은 니어카를 빌려 밀가루가 든 포대를 사러 승당마을을 지나 수영에 가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바닷가로 난 비포장도로로 해서 한 10리쯤 가려면 겨울철에는 매서운 서북풍이 불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추웠지만 옷은 형편없었다.

쌀가마 2개 분량정도 크기의 누런 마대포대를 돈을 주고 사서 집에 와서 뜯어보면 어느 날은 밀 껍질이 많이섞인 밀가루인데 우리가 부르기를 밀기울이라 했다. 어느 날은 하얀 밀가루가 많이 섞인 것도 가져올 때도 있었다.

이러한 밀가루를 물에 이겨 손으로 뜨서 수제비로 끓이고 바로 먹으면 좋은데 식어 퍼지면 그냥 끈기 없는 수제비가 묵같이 풀어져 그냥 한 덩어리가 되던 그런 질 나뿐 밀가루였다

한 번은 형님이 마대포대에 적힌 영어를 어떻게 알았는지 한 푸대 사가지고 왔는데 끌러보니 통밀이 좀 상한 것 같은데 쪄서 건조한 것이라 그냥 씹어도 찐쌀같이 고소해서 먹을 수 있고 밥을 할 때 오래도록 뜸을 들이면 구수한 밀밥이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운촌은 바다와 운촌천이 닿은 곳이라 반찬은 바닷가 물이 빠지면 '신기'라고 파란 실같이 길게 생긴 것과 파래를 뜯어 식초와 젓갈을 넣으면 바다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맛이다

그리고 돌에 붙은 고동과 돌을 들쳐내어 조개와 작은 게를 잡아다 국을 끓여 먹고살던 때였다.

시간 나면 운촌 뒷산에 있는 봉화대로 올라가서 놀기도 하였는데 그때 산개라고 시커먼 강아지를 어미 몰래 가져다 기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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