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살던 해운대 좌동 언덕배기 대동공업에 살던 때와는 이사 와서 운촌에 사는 생활환경은 달랐다.
운촌은 바닷가이고, 그곳에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고, 동백섬이라고 바닷가 사람들끼리 끈끈한 유대의식 기질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동백섬이 코 앞이고, 미군들이 탄약과 전쟁 무기를 하역하는 장소이고, 그 옆에 육지로 이어지는 솔밭에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영어는 '휄로 추잉껌 기부미'다 뜻도 모르고 남 하는 대로 껌하나 얻기 위해서 따라 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무기를 실은 엘시티(LCT) 배는 그 길이가 50m가 더 되는 것 같고 높이도 무진장 높은 배다
이 배가 들어오면 강하나 사이인 운촌 작은 동내는 축제 분위기다.
어른들은 탄약을 내리는 노무자로 가고, 아주머니들은 밥 하러 가고, 애들은 가끔 하수 보이라고 미군들의 심부름도 하면서 돈도 받고 과자도 얻어 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촌 동내는 미군들에게 특별하다. 주민들에게 미군들이 주는 선물표를 식구수 대로 받아 선물을 받으러 미군부대를 가면 그곳에서 영화도 보여주는 행사를 하였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노사 간의 위대감을 높이기 위함이며, 다음날 탄약을 내리는데 대한 사전 환영행사였다.
선물표를 가지고 순서대로 줄을 서서 반달모양의 미군막사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물품을 통로 양 옆으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가장 먼저 큰 타월을 주는데 양팔을 편 것보다 더 넓은 두툼한 타월인데 양손을 앞으로 내밀면 그 위에 접은 타월을 올려놓고 그다음으로 걸어가면서 남자 애들에게는 몇 가지 옷과 과자, 추잉껌, 장난감(움직이는 기차), 구슬(아이 녹고, 다마), 털모자, 양말... 등,
여자애들에게는 타월과 여자옷, 인형(눕히면 눈을 감고 세우면 눈을 뜨는 신기한 여자 인형) , 과자, 신발, 스카프,... 등, 여러 가지를 양팔이 무거울 정도로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는 그 당시 처음으로 총 천연색의 기다란 화면인 시네마스코프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 당시에는 가끔 해운대 시장통에 들어오는 변사들이 말로써 하는 무성 흑백 한국영화 '여자의 일생' '그대는 돌아왔건만'도 보았고,
만담으로는 장에 소 팔러 가다가 출생하였다는 장소팔 씨와 고춘자 만담으로 '이수일과 심순애'는 단골메뉴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고 웃음 짓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대사 대목은 "순애씨 김중배의 돈이 그렇게도 그립더냐? 퉤" 하며 침을 뱉은 장면에서 심순애가 하는 말 "수일씨 미우면 침을 뱉을 것이지 왜 가래침을 뱉습니까?"
처음으로 미국의 총천연색 영화를 보는 때라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한창 커날 때라 스릴 있는 서부영화는 어린애들에게는 희망이요 가장 추억거리다.
그래서 아이들끼리 만나면 권총 빨리 뽑기와 벽에 등 굽히고 말타기 놀이를 하고 그 당시 영화배우는 죤웨인, 게리 쿠퍼, 토마스 핏첼, 아르낫트, 틴마틴, 위차드위드마크, 카크다그라스... 등
여자 배우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래도 엘리자베스테일러, 진시몬즈, 그레이스 켈리, 등이 생각난다
영화로는 존웨인의 역마차, 카크다그라스의 보물섬, 케리쿠퍼의 하이눈,위차드위드마크의 최후의 포장마차 ... 등 필설로는 다 못한다.
내가 커나면서 가난과 연좌제등으로 학업을 못해 영어는 배우지 않았지만 어릴 때 미군부대 앞에서 살면서 미군들과 접한 관계로 토막 영어실력이 좋아 커서 해외 산악 원정으로 네팔에서는 언어가 영국 식민지로 인해 영어권이라 이 토막 영어가 정기 교육을 받은 이 보다 더 소통이 빠르고 유용함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