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4살 때 6.25 사변이 났으니 내가 운촌에 7살 되던 해에는 정말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이 바다와 동백섬이 있어 바닷속에는 미역과 파래가 있어 미역귀를 많이 뜯어 먹었으며 고동과 게, 군소와 해삼,, 소라와 전복등을 자맥질해서 많이 삶아 먹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봄에는 보리서리해서 꾸버 먹고
여름에는 동백섬 가서 고동 잡아 삶아 먹고
가을이면 좁쌀열매 따서 손으로 비벼먹고 감이며 고구마며 콩을 따서 꾸버 먹고
찔레순 꺾어 껍질 벗겨 먹고 개구리 뒷다리 꾸버 먹고
밭에서 오이 닌징(당근) 과일 뚱쳐먹고
주인이 다 캐고 간 고구마밭을 전전하면서 고구마 줄기 따라 캐 들어가면 고랑에 주먹만 한 고구마 이삭 캐서 삶아 먹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꿀꿀이죽 사다 끓여 먹고....
봄에는 못 먹어 얼굴이 누렇게 뜨서 퉁퉁 부운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가을이면 오줌 똥 비료한 무 뽑아먹고 채독에 걸려 얼굴이 퉁퉁 부운 모습을 많이도 보았고,
겨울내내 산에서 줒어온 도토리 상수리 삶아 먹고 머리털이 홀라당 빠진 사람도 보았습니다.
동내 농장에 돼지 새기 낳으면 싸라기 곡물로 한 3일 정도 죽을 끓여 주는데
큰 솥에 죽이 펄펄 끓을 때 바가지로 죽을 퍼 훔쳐먹으면 모래가 많아 먹질 못합니다.
솥 아래 모래가 폭폭 하며 끓을 때 김구멍으로 뒤집혀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식은 죽이니 모래는 가라앉았겠지 하여 위에 부분을 퍼먹어도 모래가 있습니다.
죽이 끓을 때 모래가 위로 솟구쳐 굳어 내려가지 않고 식었기 때문입니다.
뒤에 알았지만 싸라기 죽은 식었을 때 중간 부분이 모래가 적다는 것은
형님들이 자기들 만의 훔쳐먹는 노하우를 나에게 전수하기는 형들이 다 자란 훨씬 지난 뒤였습니다.
우리나라 제주에 밀감을 심기 전에도 우리 식구들은 한 때 미깡(밀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본을 다녀오실 때 밀감을 선물로 받아 오신 것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밀감껍질을 서로 벗겨보려고 싸우던 기억과
벗기면 조각조각으로 나누어지는 밀감 알맹이가 신기하다고 느낀 기억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오동나무상자에 20개 가량의 밀감이 들어있는데 밀감 사이사이에
국수 가닥처럼 생긴 나무 대패밥이 들어있었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라면도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에 캠핑온 서울대학생들이 A형 군용 천막 속에서 끓여 먹는 라면을 보았습니다.
하도 신기하고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나에게도 조금 맛볼 기회를 주었습니다.
자기들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국내 시판은 없고 일본에서 수입해서
공군 조종사들의 간식으로 지급되는 것을 자기 삼촌한테 얻어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커 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못살고 못 먹든 과거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그때는 모든 나라가 다 그랬어요"라고 쉽게 말해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