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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 기억 20, 나의 어머니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나의 어머니 고생은 6.25 사변 피난민 시절 우리 삼 남매를 키우고 지키느라 애쓰신 것은 어린 내가 봐도 대단하셨다.

일본 유학을 마친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잘 살게 만들기 위해 진영에다 일본 기술자와 묘목을 가져다 단감을 최초로 심으시고,

배워야 남녀평등 생활평등이 된다고 소설 속의 상록수와 같은 생활을 하시고

밤에는 야학도 하시다가 국사를 줄을 좌측에 서신 관계로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도피생활을 하시다가 아버지와 이별하고

그 당시 노무자 천국인 수영비행장 건설과 해운대로 이사하여 6.25 사변 피난민시절 노동으로 우리를 지키신 분이다

정신적으로는 해운대 살면서 승당 절에 다니시다가 내 나이 3살 적에 원불교 시창 39년에 총 신도 서열 1694호로 입교하여 원불교로 개종하셨다.

지금 원불교 입교 교도수가 몇백만이 될 터인데 74년 전이라 1694번째 입교한 것은 교조를 1세대로 보면 2세대 정산종법사 시절이라 오래전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인데 그 당시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한 달에 3번으로 부산 본동인 남부민정 지부인 옛날 대각사를 인수한 후원불교 경남교당이 된 곳을 다니셨는데 왔다 갔다 하루 종일 걸렸다.

뒤에 가까운 동래에 교당이 들어서고는 동래교당으로 다니셨고, 민락동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생겨 교통이 편리한 부산진 교당으로 다니시다 해운대에 교당을 마련하고자 남이전 김주원 박명덕(모친) 3명이 동백섬 정상에서 설날부터 100일 기도를 하셨는데 주전자에 담아 간 물이 얼어 주전자 채로 놓고 기도를 올렸다.

아침새벽 밥하기 전에 일어나셔서 조석 심고를 올리시고 좌복을 펴고 앉아 눈을 감고 좌선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좌선 후에 경문을 외우시는데 나는 어려서 그 뜻은 몰랐지만 날마다 따라 하다 보니 나도 어렸을 적에 경문을 줄줄 외웠다.

뜻은 몰랐지만 어머니께서 "일원(一圓)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라고 외우시니 어머니께서 얼마나 돈이 그리우면 아침마다 돈 일원(一圓)이라도 벌게 해 주십사라고 하는지 그렇게 알았고, 나도 얼른 커서 돈을 벌어 어머니께 드려야지 마음먹기도 하였다.

반야심경을 외우실적에 "반야(般若) 바라(波羅).."라고 외우시면 나는 그 뜻을 몰라 '봤나 바라' 라고 알았고,

"보리살타(菩提薩埵) "라는 구절에서는 왜 아침마다 밥도 하지 않으셨는데 보리쌀이 탄다고 하시는지 ,

"아재아재 바라아재 바라승아제(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라고 외우시면 경상도에서는 삼촌을 아재라고 하는데 왜 삼촌을 아침마다 부르시는지 궁금했다.

휴휴암 좌선문을 외우시는데 "대포무애(大砲無涯)하고 세입무내..."라고 외우시면 나는 전쟁에 사용하는 대포인줄 알았고,

약언여시( 略言如是)나 상컨덴 비지묵능궁( 非紙墨能窮)이라"라고 외우시는 대목에 가서는 '약은 여우가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비지를 먹는가 보다 라고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원불교를 알리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는 김양수 김효명박사의 어머니가 송혜각씨인데 나의 어머니께서 원불교에 연원으로 인도하셨다.

그 뒤에 해운대 교당을 우리 집 바로 앞에 세우시고 해운대는 아이들 키우는데 적당하지 않다고 서울 용산으로 이사를 하셨다.

뒤에 재가를 하신 뒤로는 우리 삼형제가 모두 가출로 멀어졌고 어느덧 나의 회갑에 어머니를 그쪽 형제들께 어렵게 초청 허락받아 중국 장가계를 꿈같이 여행하면서 20일간 함께 하였다,

그때 날마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크게 감동받은 일이 많았는데 중국 장가계에서 나의 한시 한수로 어머니의 인격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싶어 올려 본다.

 

"중국여행 둘째 날 장가계 정상의 천하제일교 부근 경치 좋은 곳이 당연 인기였다.

사람도 많고 경치에 넉을 잃다

부근의 이름도 활홀경에 정신도 잃는다고 '미혼대(迷魂臺)'라 했는가 보다

어머님을 모신 우리는 몇 개의 상점이 있는 부근에서 자리를 잡고

간식을 할 겸 보온병과 빵과 과자가 든 배낭을 풀었다.

어머니 뭐 드실라요?

​"나는 커피나 한잔 사다고"

​아내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커피를 사러 상점으로 갔다가

​매점의 커피값이 너무 비싸다고 돌아온 옆지기를 보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었다.

"이런 곳에 오면 입맛을 다시고 가야지 그냥 가면 못쓴다.

나는 시장 가서도 입맛 다시고 오지 그냥 안 온다.

그래야 없이 사는 그들도 먹고살 것 아이가" 하시었다.

秋氣偏揭迷魂臺

槍劍建壁新一層

綿雲橋下烟霞散

天子索道銑希望

十里畵廊天上展

金편溪谷世間流

曾聞武陵仙境在

桃花流水此中看

서늘한 가을 기운이 미혼대에 걸쳐

창검모양 세운 바위벽 장가계가 한결 새롭구나

천하제일교 아래로 솜구름 연하로 사라지고

천자산 케이블카는 희망의 꿈 싣고 내려오네

십리화랑 펼쳐진 경치 천상전시 같고

금 편 계곡 맑은 물이 세간으로 흐르는구나

내 진즉 무릉도원이 있음을 들었느니

도화유수 선경이 여기인가 하노라."

 

중국여행을 마치고 헤어져서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께서 103세에 서울 효도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가지 못했다

옛날 풍습으로는 "재가한 어머니는 돌아가시면 본댁으로 모신다"라고 하지만 시대도 변했고, 자식은 모두 어머니 자식인데 우리가 양보해야지 하고는 갈 수가 없었다.

뒤에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왔다는 75년 전의 원불교 입교증과 공부로는 법위가 성현의 경지에 오른 법강항마위를 생전에 받으신 법위증과 원불교 전신인 '불법연구회'의 초대 교서들이 많이 나왔었다.

추석에 제사를 올리려고 준비하다가그리움으로 글 한편 엮어서 어머님의 영전에 올려 본다.

『영천영지 영보장생(永天永地永保長生) 만세멸도 상독로(萬世滅度常獨露)

거래각도 무궁화 (去來覺道無窮花) 보보일체 대성경(步步一切大聖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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