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추석이다 추석날만 맞이하면 내 어릴 적 당한 사라호 태풍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오래된 기억이 나는 것이 추석날 맞은 사라호 태풍이다.
금년에는 태풍을 모두 비껴가는 것 같은데 이쯤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이 발생한다는데 모두 일본과 중국으로 가서 우리는 다행이지만 태풍피해가 내 어릴 때 당한 사라호 태풍쯤이나 강력한가 중국에는 피해가 많다고 들린다.
내 어릴 적 사라호 태풍을 당한 곳은 해운대 운촌이라는 조그마한 동네 끝자락 강변에 집 3채가 있는 중간 집이 나의 집이라 누구보다 사라호 태풍의 경험이 많다.
해운대에는 온천이 있기에 일본 식민지 시절 때부터 일본인들이 사는 집이 있었는데 그 주변을 부르기를 온천장이라고 불렀다.
심지어는 겨울에도 잘사는 집에는 온천의 따뜻한 물이 배달되고 부근에는 뜨거운 온천수로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우리가 부르기를 온천풀장이라고 불렀다.
그 집주인의 아들이 커서는 나와 국민학교 동창생인데 이름이 '싱가'라고 불렀다.
이러한 일본인들이 살던 집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주위의 울타리는 대개가 무화과나무로 되어 있는데 어릴 적에 부르기를 이찌지꾸라고 불렀다.
추석 전후로 무화과가 익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주인 몰래 연못으로 헤엄쳐가서 가끔 따먹었다.
조금 덜 익은 무화과를 많이 먹으면 혓바닥이 갈라져서 따가웠다.
어릴적 추석날인가 그 전날인가는 모르겠는데 추석이라고 오전에 전을 부치고 나물을 볶고 있었는데 사라호 태풍이 몰아쳤다.
우리 집은 춘천천 마지막 바다와 닿은 부근이라 바닷물과 강물이 닿는 곳이라 수위가 넘쳐 뒷담을 넘어 일본집 연못으로 헤엄쳐서 피신하면서도 무화과 익은 것을 따먹은 기억이 난다.
아마 우리나라 태풍 역사상 가장 큰 태풍이 사라호 태풍이라고 한다.
피신하기 전 처음에는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과 나란히 해운데 전체를 길게 흐르고 있는 춘천천이다.
그래서 해운대는 특별한 동네이름은 없고 해운대 뒷산인 장산에서 출발한 냇물이 좌측에서 우측 끝인 우리 집 바로 앞까지 흐르는데 좌측부터 좌동이라하고 중간은 중동이라하고 우측에는 우동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장산 남쪽의 모든 곳에서 빗물이 흘러 내려와서 춘천 천으로 모여 마지막에 우리집 앞 동백섬 항구로 흐르는데 그때가 바닷물이 가장 높아지는 만조라서 그런지 춘천천으로 억수로 흐르는 냇물이 바닷물과 합쳐 산더미 같이 부러나 집 앞의 도로 다음이 춘천천 뚝이라 뚝이 무너지고 집가까이 흙이 떠내려가서 피신하게 되었다.
집을 떠나면서 해운대 본동을 보니 해운대 백사장으로 바닷물이 태풍으로 인해 도로를 넘어 운천천으로 넘어오는 것도 목격했다
내 생전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일본집으로 피신을 했는데 일본집 주위가 모두 연못이라 다시 운촌 솔밭으로 피신을 하였는데 길을 가다 보니 길에 그림 그리는 물감등이 많이 흩어져 있어 물감을 주운 기억도 난다.
강원도로 이사 와서 어릴 적에 먹은 이찌지꾸(무화과)가 생각나서 심었는데 무화과는 우리나라 남도의 해남 같은 곳에 잘 자라지만 강원도에는 자라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낙산은 해양성기후라 겨울에도 따뜻해서 무화과나무가 얼어 죽지 않고 추석 이때쯤 되면 열매를 선사한다.
추위에 약한 감나무와 대나무와 무화과와 장미와 석류가 죽지 않고 자라는 강원도 양양이다.
오늘 처음으로 무화과를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