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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 기억 25, 서커스와 가설 극장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내 어린시절 살던 해운대는 서커스도 가끔 들어왔다. 서커스를 하고 나면 바로 창극도 하고 만담도 한다

출입구에 원숭이 한마리는 언제나 단골로 높은 기둥에 묶여 재롱을 부린다.

서커스를 보기위해 천막을 들치고 공짜로 들어가는데도 요령이 있어야 했다.

재빨리 밖에서 두 다리부터 천막 속으로 넣어야 한다.

그러다가 들키면 "아저씨 여기 변소 나가는 길이 아닌가요?"라고 능청을 떨면

"야~ 임마 변소는 저쪽이야 "라고 하면 안도의 숨을 쉬지만

아저씨가 달려오는 날에는 바로 도망을 쳐야 한다.

이렇게 대형 극장 말고도 가끔 마을 공터에 변사가 등장하는 무성영화나 창극과 만담을 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중동 시장통에서 온천장으로 조금 가면 참기름 짜는 집에서 왼쪽으로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부근에 무덕관이라는 체육관도 하나 있고, 그 옆의 넓은 공터에 가끔 영화가 들어온다.

영화하는 날에는 점심 때 부터 트럭에 포스터 붙이고 나팔 불고 선전하면 우리는 기대에 부픈다.

일찍 저녁을 먹고 그곳에 가면

흰천으로 포장을 빙 둘러치고 영사기를 갖다 놓고 자막을 설치하고 출입구에 줄을 치고 덩치 크고 험상궂은 아저씨 두 명이 출입구에서 검표를 한다.

몇몇 이름있는 동네어른들이 그냥 들어가고, 또 아가씨들도 몇 명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그냥 공짜로 들어간다.

우리는 운이 좋으면 천 포장을 들치고 들어가지만 그렇지 못하는 날에는 기다리다가

영화가 절반이 지나면 그 때는 아무나 공짜로 들어간다. 검표하는 아저씨도 없다.

그동안 기다리면서 변사아저씨의 말만 듣다가 실제 화면을 보면서 변사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더 재미가 있었다.

​그 당시 만담과 창극도 많이 들어와서 가설무대에서 했다.

만담에는 그당시 "소 팔러 가다가 낳았다"는 장소팔 아저씨와 고춘자 아주머니의 찐하게 화장한 것도 생각난다.

단골 창극 주제 메뉴는 당연히 "이수일과 심순애"다.

심순애가 이수일의 바지를 잡고 " 수일 씨~!, 가더라도 오늘 밤만은..." 하고 애원하면

이수일은 "놓아라 내 다리가 학다리냐? 내 망토 찢어진다. 그렇게 김중배의 다이몬드가 좋더냐?... 가거라 가" 하고 침을 탁 뱉으면 그다음 대사에서 관객 모두 박창대소 한다.

심순애가 얼굴에 묻은 침을 마치 껌딱지 붙은 것 떼듯이 몇번 딱으며 하는 말이 "수일 씨~ 미우면 그냥 침을 뱉지 왜 가래침을 뱉습니까? 흑흑"....

그리고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노래인 장한몽이 흘러나오면서 끝마친다.

다시 국산영화를 했다. 물론 무성영화다.

나이도 어린 내가 무성영화를 보고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제목은 <그대는 돌아왔건만>이란 영화인데 전쟁통에 헤어진 부부와 자식들의 헤어진 슬픔을 다룬 영화인데

그 여주인공인 아주머니가 마지막 남편과 자식을 만나고 죽는 슬픈 영화인데

천방지축으로 살던 때지만 감정은 풍부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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