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운촌에는 부산에서도 으뜸가는 주먹쟁이들이 몇 있었다.
달려오는 택시를 집어던졌다는 '태화'아저씨도 우리 누나 친구인 문자 오빠이고
깡다구 좋기로 유명한 '유지로'라는 이도 누나 친구이고
그 아래 '수구' '윤식이' '도명이'.. 등등 그리 크지 않는 동네에는 주먹쟁이들이 많았다.
그 아래 우리 또래에는 같은 운촌에 사는 '상식'이(뒷날 커서 기장 대변죽도 모 종교단체 수호두목)
그리고 해운대 본동에는 온천장집 아들 '싱가' 미포에는 '진태' 그 정도가 기억난다.
그런데 해운대에는 전쟁으로 인한 고아들이 많아 고아원이 해운대에만 해도 4~5개는 되었다.
동백섬에 있는 <종덕원> 해운대역 위에 있는 <아네리세 고아원> 운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박이원(?)인가 하고 그 옆에 또 한 곳
그래서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내 나이 보다 5~6살이 많은 누나 형님들과 같은 반을 다녔고 그 당시 졸업앨범을 보면 처녀티가 역력한 분들이 동창생이다.
그러니 나이 많은 형님들은 자기 또래와 어울려 놀고 우리와는 함께 놀기를 끄려 했는데 그래도 나는 일찍 조숙해서 덩치와 키가 그들과 비슷해서 어울렸다.
가끔 동백섬 바닷가에 자맥질을 하다가 빤스를 갈아입는 형님들을 보면 그곳(?)에 털이 새까맣게 나 있어 우리와 다르구나 하고 느끼곤 했다.
그런데 고아원 출신 중에 우리 또래 아이들도 성질이 좀 그래서 내가 가끔 때려주면
그날은 학교 방과 후 10여 명이 떼거지로 나를 잡으려고 해서 도망도 가고 가끔 맞기도 했다.
그네들의 단결력은 식구라는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어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한 번은 내가 나 보다 나이 많은 고아원생과 싸워서 그 애가 코피를 흘리고 귀가했는데 그 고아원이 우리 집과 강 하나사이로 가깝게 있어 밤늦게 우리 집을 습격해서 출입문을 부수고 야단을 치고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누나 친구인 주먹쟁이 몇몇이 종덕고아원을 방문해서 그들을 때리고 혼내주었다.
그 당시는 그래도 별 수가 없었다.
그네들은 어느 정도 윗선에 가면 꼼짝 못 하는 제도 때문에 그 뒤로는 나에게 단체로 덤비는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제압하다 보니 나도 내 또래에서는 그래도 2등은 싫었다.
옆 반의 덩치 큰 아이와 또 붙었다.
겨울철에는 학교 교실뒤 변소담장이 가장 따뜻한 곳이다
긴 교실이 겨울 서북풍을 막아주는 역할이 있어 항상 그곳에는 늦게 가면 기대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늦게 온 그 덩치 큰 녀석이 내 옆에 오더니 밀어서 내가 넘어졌다.
그 당시는 까칠한 시멘트 벽을 기대고 밀치기를 하다 보니 교복 뒷등이 먼저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 함께 넘어졌던 친구들의 체면도 있고 해서 그 자리에 붙었는데 막상막하였다가 공부 시작종이 울려 그만두었는데 그 뒤 애살(샘)이 많은 우리 형님이 그 소문을 듣고
나와 그 친구를 데리고 바닷가 모래밭에서 다시 싸움을 붙인 적이 있었다.
결국 내가 이겼고 다음날 나는 또 그 따뜻한 변소옆에 기대 있다가 그 덩치 큰 친구가 보이길래 불러 한방을 내리첫으나
그 친구는 아무 반항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전교에 명환이가 주먹쟁이라고 소문이 퍼졌다.
그렇지만 같은 반 친구는 때린 적이 없고 다른 반 아이들에게 맞고 오는 우리 반 친구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집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했다는 사실이 지금 와서도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