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의 해운대 인심은 육이오 동란을 격은 후라 뜨내기 인심은 좋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살던 토박이들의 인심은 좋았습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호텔과 여관이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면서 부산과 대구 같은 곳의 외지인이 모여들면서 해운대 본토의 인심도 개인주의와 상업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인심이 좋았습니다
해운대 동쪽 끝자락 미포에 가면 싱싱한 꽁치 노래미 술배이등 고기를 조금은 얻어올 수 있는 그런 곳이었고
동백섬에 가면 해녀들이 점심으로 삶아놓은 소라며 홍합을 얻어먹을 수 있고
잘하면 멍게와 군소등도 한 바가지 얻어올 수 있는 그런 인심이었습니다.
아예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날마다 긴 거물을 배에 싣고 바다를 한 바퀴 돌아오면 우리는 양쪽의 그물을 당깁니다.
마치 줄다리기 시합을 하듯이 해서 그물이 뭍에 닿으면 손으로 고기를 잡다가 손이 물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기 잡는 방법을 '후리'라고 합니다 아마 일본말 같습니다
그때는 갈치도 많이 잡히고 꽃게(날개)도 많이 잡히고 했습니다.
갈치를 잡을 때는 조심해야 됩니다.
뱀같이 길어서 꼬리를 잡으면 돌아서서 날카로운 이빨로 손을 물기도 합니다.
평일에는 둥근 쇠그물에 생선토막을 매달고 바닷속에 던져서 꽃게를 많이도 잡았습니다.
그때는 농촌에서 채소를 나누어 먹듯이 바닷가 마을에는 생선도 나누어 먹고 그랬습니다.
가끔은 고래도 잡아오면 밤새 고래고기를 삶는 냄새며
고래 고기를 꺼낼 때는 기름이 범벅이 된 주먹만 한 고래고기도 잘라서 우리들에게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먹다가 남으면 주머니에 넣어두면 주머니가 고래 기름이 배 나서 번들 번들 하기도 하였고 책가방에 넣어가서 학교에서도 가끔 꺼내먹곤 했습니다.
그때는 고래 고기가 참 흔했습니다.
고래 고기 노래도 있지요
"고래 고기 고래 고기 서울내기 다마 내기 맞좋은 고래 고기..." 뜻도 모르면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멸치도 엄청나게 잡혔습니다,
생 멸치 큰 것은 모래에 문질러 비늘을 제거 후에 초고추장에 해로 먹는 맛은 일미입니다.
해변가에는 밤새 솥을 걸고 잡아온 멸치를 자동차 헌 타이어를 잘라 불을 때면서 삶아 모래바닥에 가마니 펴고 멸치를 널어 말립니다.
우리들은 모래에서 작난치며 노는데 주로 하는 놀이는 <고상> 아마도 일본말인 듯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항복 받기라는 놀이인데 몇 번 하다 보면 콧구멍 귓구멍 눈구멍에 모래가 가득합니다.
그럴 때면 서로 런링구(런닝)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대결을 합니다.
밤이 깊어지면 간식으로 멸치 삶는 곳에 가면 싱싱한 멸치를 방금 대 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한 대접 식 얻어먹으면 배가 든든합니다.
늦은 밤 멸치를 다 삶고 난 솥에 말라 붙은 멸치를 떼어먹으면 진미 중에 진미입니다.
우리 형님도 고것 떼먹다가 한쪽다리 솥에 빠져 지금도 흉터가 크게 나 있습니다.
그리고는 밤에는 백사장에 가마니 깔고 그대로 새벽까지 친구들과 잠자고 날 새면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