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초등)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수' 아니면 '우'는 나오니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를 기다리든 그런 놈이었습니다.
공부가 지루하면 종이 입에 넣고 씹다가 고무줄에 끼어 멀리 앞 친구 머리통을 겨냥해서 튕기다
어떤 때는 실수로 칠판에 글씨 쓰고 계신 담임선생 바로 옆 칠판에 딱 붙어 김학렬선생께서 놀라 해 하시면
그때는 웃음바다지만 잠시 후 나는 혼줄이 납니다.
그래도 심심하면 이젠 종이를 입에 넣고 씹어 손바닥 치기로 교실 천장에 많이도 붙여 놓기도 했지요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밖에 나가 고무줄 놀이 하는 나의 첫사랑 그 여학생을 지켜보는 그런 날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마치 도둑질 하는 그런 두근거리는 혼자의 심정으로 같은 반이지만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혹 남학생들이 그 학생이 고무줄 놀이 하고 있는데 고무줄이라도 끊고 달아 나기라도하면
결국 그 학생은 나에게 코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이 내 맘속에 피어나던 그런 때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운촌의 나의 집을 가는 데는 3개의 길이 있습니다.
가장 짧은 길을 마다하고 항상 제일 먼 길인 논두둑을 건너고 또랑을 죽 따라가면
제일교회(?)인가 교회가 있고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소방대와 그쪽으로 같은 반 친구집인 조성욱의 <부인병원>도 있었습니다.
계속 또랑을 타고 걸어가면 운촌이 나오는데
나는 제일교회를 앞에서 바라보면 우측으로 관사가 있는데 그곳에 같은 반인 순하고 모범생인 강종찬 친구집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 교회의 장로였고 그곳에 유치원도 있었습니다.
그 교회 우측 길로 가면 소나무 숲이 있었지만 평지였습니다.
그 마을 중간쯤에 사는 여학생이었습니다.
나는 한 때 몰래 그 여학생 뒤를 따라가 그의 집을 확인했는데 생활은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 없고 이름도 모두 까먹었습니다.
어릴 때의 생활상에 일어난 일들은 지금도 내 머리에 모두 생생하게 남아 있지만
첫사랑의 기억은 모두 잊은 것은 나에게는 이런 일은 호사인 것이라 쉽게 잊지 않았나 봅니다.
커 나서 가끔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그 동네를 설명하고 그 여학생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물어보지만 그 여학생의 이름은 듣지 못했습니다.
고향을 떠나오고 가 보지 안은지가 65년이 넘었으니 잊을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잊히지 않고 되살아 나는 것은 어릴 때 순수한 마음에 사랑으로 각인된 일이라 그런가 봅니다.
얼굴도 둥그렇고 마음씨도 착하고 말이 없고 수수하게 입었지만 가난하게 보이질 않은
이 여학생의 이름이 너무 세월이 흘러가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 하고 아무관계가 없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얼굴과 이름은 잊혀지지 않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1분만 보고 있으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