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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기억 36, 해운대 좌동에서 우동으로 다시 중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우리는 부산 범냇골 한국 철도 공작창에서 일본에서 함께 유학한 아버지 친구에게 맡겨져서 어머니께서 한 때 식당 중에서 간부들만 식사하는 조그마한 식당을 맡아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잡혀 이별하고는 더 이상 그곳에서 있을 수 없게 되어 그 당시 해운대 좌동에 있는 대동공업이라고 무기를 만들고 차량을 개조하는 곳에서 특별채용되는 기술자로 가시는 한국 철도 공장창에서 밥 해 준 인연으로 기술자 아저씨를 따라 해운대 미포와 좌동사이 언덕배기에 있는 대동공업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대동공업은 6.25 전쟁과 관련한 공장인듯한 곳으로 많은 사람이 출퇴근하면서 일을 했고

밥집이니 가게니 해서 회관마당에 빙 둘러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몇개월 살다가 우리는 우동의 운촌이란 동네에 집을 새로 구입하고 이사를 갔습니다. 이유는 수영비행장에 노무자로 일하시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니까 해운대의 가장 동쪽인 좌동에서 가장 서쪽인 우동으로 이사를 간 셈이며

후일에 돈을 벌어 해운대 중간인 중동으로 이사를 왔기에 해운대의 모든 곳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중동의 시장통에서 가장 큰 집을 구입했는데 그때는 중동 시장통에 2층건물이 우리 집과 '금강상회'라고 시장입구에 자리한 잡화상 건물 2곳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크고 넓은 집을 구한 이유는 그곳에서 당구다이(당구청판)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외삼촌을 돕기 위해서 큰집을 물색하다가

미군을 상대하는 양색씨들이 운영하는 댄스 홀을 사서 1층의 넓은 홀은 삼촌의 공장으로 하며

그 옆의 방에서 어머님께서 사셨고 이층은 우리들이 사용했는데 그래도 2층에는 양색씨들이 사용하는 보루(종이) 박스로 벽가림을 한 방인데

아래층에도 방이 3개가 있고 주방과 화장실 목욕실이 있었으며

넓은 홀에서는 춤을 추는 곳으로 사용하던 집이라 바닥이 시멘트바닥인데 매끌매끌 하였습니다.

이층에는 방이 많아 형님과 나는 이층 계단 첫머리에 있는 전망 좋은 넓은 방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때 내가 기거하던 방은 옆방의 소리도 다 들리고 주먹으로 치면 벽이 울리는 그런 방인데 가끔 장난을 치다가 벽이 뚫렸는데 뜯어보니 미국달러 동전이 벽체 가득 나와서 그것을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어머님깨 알려서 처리한 적도 있습니다.

​외삼촌은 밤늦게 당구판(다이)을 만들고 킷대(당구 치는 작대기)를 깎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외삼촌께서 당구다이를 모두 완성해서 조립하고 나면

그 위에 코끼리 치아(상아)로 만들었다는 공을 놓고 당구를 쳐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새벽같이 분해해서 울산이며 대구며 트럭에 싣고 가서 조립해 주고 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울산에도 우리의 당구장이 하나 있었고 부산본역 앞 대청동에도 <원 당구장>이라고 우리 것이라는 당구장이 있어 우리 누나가 당구장 주판과 경리관리 관계로 그곳에 근무도 하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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