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는 중학교에 잘 들어가야 좋은 고등학교 들어갈 수 있고
좋는 고등학교 들어가야 좋은 대학들어가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중학교 들어가는 것이 요즘 수능보고 수능점수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잘 들어가기 위해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잘사는 집 부모님은 자기 자식은 물론 학급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불러
함께 집에서 공부하라고 방도 내 주고 간식도 제공해 주고 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끼리끼리 친하다 보니 학교에서는 연애한다는 헛소문도 나고 잘 사는 집의 아이는 그들 끼리 몰려다녔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그 때는 우리집도 시장통에서 이층집으로 통하던 때가 있었는데도
대개 재미있는 일이나 모험적인 일에는 항상 내가 끼여야만 되는 듯도 했습니다.
우리도 그 때 공부 잘하는 몇몇이서 부모 모두 산부인과 출신인 <부인병원> 이층에서 아들 조ㅇㅇ친구가 추천해서 모여 공부도 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던 이층 방은 변소가 좀 멀었습니다.
우리는 공부에 열심이다가 소변이 급하면 창문을 조금열고 소변을 누곤 했는데
하루는 내가 소변을 누기 시작 했는데 그 집의 어머니께서 밖에 나오시다가
"왠 비가 오나" 하며 1층 처마를 벗어나 떨어지는 나의 오줌을 맞으면서 한동안 계셨습니다.
하늘을 보고 계신 어머님(?)의 얼굴과 머리에 그동안 공부하느라 참았던 나의 오줌양이 다 쌀려면 아직 절반도 더 남았는데...
그 어머니는 계속 맞고 계시다가 늦게사 오줌인줄을 알고는 "아이고야~~" 하며
이층으로 뛰어 올라오셔서 혼을 내키기도 했습니다.
대개 2층건물의 창문이란 1층 출입문 바로위에 2층창문이 있는 것이 대부분인 지라
정통으로 오줌벼락을 맞었던 것이 였습니다.
그 뒤에도 개구쟁이 우리들이 공부도 많이 했지만 혼도 많이 나고 그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모여 공부한 친구들은 대부분 부산중학교와 경남중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나도 부산중학교에 우수하게 합격은 하였는데 부산중학교 학칙상 다니지는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