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運逢恩師1947~1968

오래된기억 37, 정통으로 오줌벼락을 맞었던 것이였습니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우리 때는 중학교에 잘 들어가야 좋은 고등학교 들어갈 수 있고

좋는 고등학교 들어가야 좋은 대학들어가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중학교 들어가는 것이 요즘 수능보고 수능점수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잘 들어가기 위해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잘사는 집 부모님은 자기 자식은 물론 학급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불러

함께 집에서 공부하라고 방도 내 주고 간식도 제공해 주고 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끼리끼리 친하다 보니 학교에서는 연애한다는 헛소문도 나고 잘 사는 집의 아이는 그들 끼리 몰려다녔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그 때는 우리집도 시장통에서 이층집으로 통하던 때가 있었는데도

대개 재미있는 일이나 모험적인 일에는 항상 내가 끼여야만 되는 듯도 했습니다.

우리도 그 때 공부 잘하는 몇몇이서 부모 모두 산부인과 출신인 <부인병원> 이층에서 아들 조ㅇㅇ친구가 추천해서 모여 공부도 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던 이층 방은 변소가 좀 멀었습니다.

우리는 공부에 열심이다가 소변이 급하면 창문을 조금열고 소변을 누곤 했는데

하루는 내가 소변을 누기 시작 했는데 그 집의 어머니께서 밖에 나오시다가

"왠 비가 오나" 하며 1층 처마를 벗어나 떨어지는 나의 오줌을 맞으면서 한동안 계셨습니다.

하늘을 보고 계신 어머님(?)의 얼굴과 머리에 그동안 공부하느라 참았던 나의 오줌양이 다 쌀려면 아직 절반도 더 남았는데...

그 어머니는 계속 맞고 계시다가 늦게사 오줌인줄을 알고는 "아이고야~~" 하며

이층으로 뛰어 올라오셔서 혼을 내키기도 했습니다.

대개 2층건물의 창문이란 1층 출입문 바로위에 2층창문이 있는 것이 대부분인 지라

정통으로 오줌벼락을 맞었던 것이 였습니다.

그 뒤에도 개구쟁이 우리들이 공부도 많이 했지만 혼도 많이 나고 그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모여 공부한 친구들은 대부분 부산중학교와 경남중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나도 부산중학교에 우수하게 합격은 하였는데 부산중학교 학칙상 다니지는 못하였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