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도 싫고 교복에다 중학교 모자까지 쓴 친구들이 부럽기도 해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기로 마음먹다가 범어사로 출가한다고 하니 어머니는 반가워하셨다.
불심이 장하신 어머니시지만 해운대에서 나뿐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는 나를 보고 걱정이 되어서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서울로 가출을 하기로 다짐을 했지만 손에 든 돈이 없어서 차일피일하다가 어릴 때 절에 맞겨진 이력이 있어 우선 집을 떠나보자 하며 중이 될려고 나는 출가를 결심하고 동래 팔송리에 있는 범어사로 갔습니다.
며칠이고 객사에 머무는데 아무도 말을 걸지않고 일도 시키지않고
며칠이고 밥주면 밥먹고 그리 살다가 하산을 결심하고 나올려고 하는데
스님 한분이 지개를 하나 가져다 주면서 원효암 허물어진 기와장을 지고 오라고 해서 그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나의 지게지는 솜씨에 탄복을 하고 나를 극진히 아끼는 눈치를 보이더니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내가 이곳에 오기전부터 해운대 장산에서 나무한 경험이 있는 줄은 몰랐으니 그리했습니다.
그러나 며칠만에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학교도 못가고 그동안 초등학교 때는 심하게 장난치며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하였지만
갑짜기 친구들도 멀리하고 신사에서 중질하기는 너무 외롭고 적적해서 그냥 하직인사하고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그 때 해운대에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도 많았고 잘나가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나의 친구중에도 그의 집에서 부모가 모두 부인병원하는 친구도 있고 제일호텔하는 친구, 돈 많은 친구, 부모가 교회를 운영 하는 친구, 친구중에도 빈부차가 매우 컸었습니다.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어릴 때 부터 유치원 다니고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도 여럿이 있었습니다.
나는 중도 못되고, 깡패로 빠지기도 싫고, 집에 있기도 싫지만 부모형제를 떠나기는 어려웠습니다.
내가 가장 어정정하며 방황하며 지내던 시절이 이 때였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밀항선으로 일본갔다는 소리도 들리고
종덕원 고아원에 사는 나이 많은 여학생은 벌써 시집을 갔다는 소리도 들리고
여하튼 깊이 생각하고 방황하는 어린 시절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