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현 김득수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하지(夏至)가 얼마 남지 않아 지리산으로 가야 하네 모든 약초가 하지가 지나서 캐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약성도 적고 바로 상해버리는 것이지, 특히 산삼은 하지 전날 캔 것 하고 하지 지나 캔 것 하고는 보관이 달라, 하지 전날 뿌리를 열어 보고 크지 않아 닫아두면 그냥 썩는 거야 그렇지만 하지 하루 지난 후에 뿌리를 열어보고 뿌리가 적어 상품가치가 없어 다시 덮어둬도 아무 하자가 없는 것이여 그러니 산삼이 영물인거지"
함께 살던 형님이 물었다.
"내일 지리산으로 가면 언제 다시 거창으로 오는 가요?"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늦가을 쯤 되야 오겠지 독사는 월동하기 전에 산꼭대기로 올랐다가 내려가서 월동하므로 오르고 내릴 때 잡는 것이 약성이 좋고 쉽게 잡을 수 있어서 늦가을 지나야 정리해서 오게 되지" 하셨다.
다음날 팔현선생과 형님 그리고 나 3인이 짐을 챙겨 함양으로 출발하다
새벽부터 비가 내려 다음날 가는가 보다 해서 머뭇거리는데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아침 식전 비는 한양길을 떠나라는 것이지, 아침 식전 비는 해 뜨면 바로 개는 것이여" 하시었다.
우리 일행은 걸어서 함양 조금 못 미처 안의에서 점심을 먹었다.
갈비탕을 시켜 먹으면서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잘 먹어둬 산속에 들어가면 못 먹으니 안의 갈비탕이 전국에 이름이 났어, 옛날부터 안의가 명당 중에 명당이여, 대개 지명만 봐도 알 수 있거든 안의 안성 안양 안동... 등등 편안할 안(安) 자가 들어간 곳은 동내가 명당이여"하셨다.
점심을 먹고 차를 타고 함양을 거쳐 인월에 내려 마천 쪽으로는 버스는 없던 시절이라 걸어가면서
팔현선생께서 말씀 하셨다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은 이성계가 황산에서 일본 아도발토장군을 활로 싸서 죽일 때 처음에는 함양 팔랑치와 남원 여원재를 몇번 오고 가게 해서 힘을 빠트린 뒤에 인월에서 활로 쏘고자 했는데 늦어 해가 저물어 컴컴하엿는데 이성계 책사인 스님이 달을 끌어올려 이성계가 활을 쏘아 죽였어 그래서 끌 인(引) 자, 달 월(月) 자여"
마천으로 걸어가다가 지나는 트럭을 팔현선생께서 세우시고 몇 가지 말을 하니 바로 타라 해서 산내에 내려 다시 지리산 삼정으로 걸어가면서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타고 온 트럭은 달궁광산에서 중석을 캐서 운반하는 트럭이여 일본 놈들이 그 깊은 달궁에 중석이 있는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대단한 사람들이여"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지명을 잘 알아둬라 지금 가는 곳이 삼정인데 도정 덕정 법정의 세 가지를 합 친 것이 삼정(三政)이여" 하셨다.
지리산 속 삼정을 지나 벽소령 쪽 계곡길을 한참 올라가니 큰 바위 옆에 구들을 장착한 움막이 있고 옆으로 적은 폭포가 있는 곳이 팔현선생께서 지리산에서 약초 캐고 뱀 잡고 석청 따면서 지내는 곳이라고 하셨다.
깊은 산속에 처음 맞이하는 곳이지만 포근하여 마치 옛 살던 고향에 온 기분이고 친 할아버지 같은 분과 친형 같은 든든한 형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