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처음으로 국가에서 노고단 대피소(무인산장)를 지었는데 이 글의 내용은 그 보다 11년 전의 노고단에 관한 나의 이야기다.
팔현선생과 함께 지리산 약초 캐러 다니다가 팔현 선생께서 노고단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언덕 정상에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기도하는 재단이 있어.
노고단(老姑壇)이라고 할 때 노 자는 늙을 노(老) 자, 고 자는 늙은 시어미 고(姑) 자를 말함인데 곧 국모신인 마고할미 또는 서술성모를 말하고 그곳에서 제단을 지어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전설로는 마고할미 남편인 할배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살겠다고 가버렸다고 해서 언제나 노고단에서 볼 때 천왕봉에 구름이 끼면 그리움이 복받친 눈물의 비가 온다고도 하지 "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본유학을 하고 나서 잠시 조선일보에 몸담았다가 사상범으로 몰려 도망을 다니다가 화엄사에서 승려생활을 하였지
일본 유학에서 그당시 일본 공산당 당수인 가다 야마 센(片山潛)과도 교류하면서 신사상을 공부한 거야
검거를 피해서 화엄사에 숨어 사는데 가끔 노고단에 사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노고단에서 내려오면 주로 내가 통역을 하였지
주로 불교에 대한 내용과 노고단에 선교사들의 휴양촌 건축일을 많이 상담하였었어!,,
그래서 몇 번 노고단에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통역을 하는데 내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영어와 중국어는 했으니까 한국어 하고 일본어를 합치면 4개 국어는 할 줄 알지, 그리고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통역하려고 배웠었어,
그 당시 노고단 아래 선교사들의 휴양처 건물이 돌로 지은 산장 모양으로 50여 채 있었는데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살았어
그곳까지 트럭이 올라가고,
1948년 10월 여수 14 연대 여순사건이 발발해서 제주 4.3 사건으로 3년간은 구례와 지리산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어
그때 노고단 외국인 선교사 휴양지가 파괘 되었는데 그중에 한 채는 반파되어 그 속에 설치된 벽난로를 내가 구들을 연구하면서 함께 연구도 하였어,
원래 노고단은 전라북도에 속해 있는 산인데 전라남도 지역으로 부당하게 편입되었어, 아마 전남 구례가 노고단 코앞이고 화엄사가 노고단 바로 아래에 있었지만 전라북도 도시는 노고단과 너무 멀어 그렇게 된 거야,
또 한편으로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1929년 구례군 마산면에 큰 저수지를 준공하였는데 빗물 유입량이 적어 마을 주민들이 1930년 노고단에서 흘러 전라북도 남원읍 산내로 가는 물줄기를 약 200여 미터를 돌려 노고단 아래 코재에서 물줄기를 구례 화엄사로 내려올 수 있도록 물줄기를 돌렸어, 그곳을 무네미라고 이름 지었는데 원래 무네미는 지리산 남원 윗마을인 번암에서 장수로 갈려면 재를 넘어야 하는데 재 정상에 주막이 한채 있는데 비가 오면 한쪽 지붕에 떨어진 빗물은 남쪽으로 흘러서 남원 요촌으로 해서 섬진강으로 해서 남해로 흐르고,
한쪽 지붕의 빗물은 전라북도 장수 진안으로 흘러 대전 공주를 거쳐 서해 금강으로 흐른다고 해서 그 물 나누어지는 지붕 용마루를 무네미라고 불렀어,
그 뒤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이 세계공원으로로 등록되었는데 다른 산에 불난 것은 아무 상관없는데 지리산이 불나면 세계공원연맹에서 난리가 나,
그 뒤 우리나라에서도 관광개발이 시작되니 산을 나누고, 지역을 분할할 때 노고단이 원래는 전라북도 산내면으로 흐르므로 전라북도에 포함되었던 거야,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산을 나눌 때 물줄기가 어느 지역으로 내리는지를 가장 크게 보는 거야, 왜냐 하면 그래야 그 물로써 농사를 짓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산에 산신재라도 고맙다고 지낼 것 아니여, 그렇게 했는데 조사단이 노고단에 올라가 보니 노고단 물줄기가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로 내려가고 있는 거야, 그래서 노고단을 전리남도로 편입시키고 그 위쪽 반야봉에서 만복대로 전라남북도 경계선을 그으니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의 심원마을 주민들은 원래 산내면소재지에 가려면 잠깐이면 되는데 전남으로 편입되니 심원사람들은 동쪽으로 산내까지 가서, 다시 북쪽으로 인월까지 가고, 다시 서쪽으로 남원으로 가서, 다시 남쪽으로 곡성을 거쳐 구례까지 가서, 다시 동북쪽으로 올라와야 구례군 산동면 소재지인 원촌리가 나오는 불편을 겪었어
그래서 심원주민들은 산동면소재지를 갈 때 재를 넘으면 바로 산동면 상위마을이니 그 아래로 조금만 걸어가면 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차량을 이용한다면 2일이 걸리는 거리이니 차비도 많이 들고 시간이 이틀이나 걸리는 불편을 겪고 있는 거야" 하시었다.
* 내가 1961년 팔현선생과 노고단에 갔을 때는 폐허가된 돌로 지은 산장이 여러 채 남아있었고 그 뒤 10년 지나 1971년에 무인대피소인 산장을 지었고, 그다음 해 8월부터 나의 친구인 함태식 씨가 관리를 하였음
사진 속 앉은 이가 노고단 산장 관리인 함태식 씨, 서있는 분이 우리나라 최고의 산악인 김정태 씨, 모두 한국산악회 1세대 산악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