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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인연 따라 이곳저곳 10, 지리산 명칭의 변천사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팔현선생께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면서 말씀하셨다

"중국 유우석선생이 지은 누실명(陋室銘)이란 시를 보면 명산은 높은데 있지 않고 신선이 기거하면 명산이라 한다(山不在高 有仙則名) 라고 했어, 지리산이 유명한 것은 수도처가 많이 있어 부르기를 대(臺, 坮) 자를 붙혀 부르는 것이여!, "

이어서 말씀하셨다.

"지리산에는 대표적으로 천왕봉의 천왕대(天王坮), 제석봉의 향적대(香積坮) 세석고원의 영신대(靈神坮), 반야봉의 묘향대(妙香坮), 노고단의 우번대(牛飜坮) 세걸산의 만복대(萬福坮) 금대산의 금대(金坮)가 대표가 되고, 더불어 33대가 있어"

다시 말씀하셨다

"지리산 명칭은 사방이 넓다해서 방장산(方丈山)이라고 하지, 방장의 유래는 인도 유마거사의 방이 방실(方室 : 마음심자가 점4획)의 유래에서 이른 심방(心房)을 말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는 지리산을 백두산 일맥이 남하하여(白頭山一脈流頭流山) 그친 곳이라해서 두류산(頭流山) 이라하여 천왕봉 남록에 두류동도 있어,

불가에서는 지혜제일사리불문수도장(大智慧舍利佛文殊道場)이라하여 지(智) 자와 리(利) 자를 따서 지리산(智利山)이라 절집에서는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그 이외도 지리산의 다른이름도 국토 동서남북에서 동개골산,서구월산, 남방장산, 북백두산의 사악중에 남악(南岳) 방장산이라하기도 하고,

봉래 영주 방장의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이라하기도 하고,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과 부악(父岳:지금의 팔공산)의 오악에도 들어가고,

그외 방아산, 아방산 ...등등 이렇게 해서 무려 지리산의 이명(異名)이 28개나 된다고 하지,

백두산은 육산(肉山)이라하고, 금강산은 골산(骨山)이라하고, 지리산은 겹산이라 웅산(雄山)이라고도 하지,"

팔현선생께서 지리산 명칭을 모두 말씀하시고는

"내가 좋아하는 지리산의 이름은 3도 7개군 영역이라 두루두루 넓다해서 두루산, 단일산맥으로는 능선길이가 가장 길어 길고 길어 걷기가 지리 지리하다고 지리산이여!, "라고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곳에서 진입이 가능하다.

남쪽에서는 순두류골이나 중산리에서 법계사로 바로 오르는 코스

북쪽에서는 마찬에서 백무동으로 해서 소지봉쪽으로 오르는 코스

한신계곡 동명목재상사 산판길로 해서 한신우골로 오르는 코스

약초꾼들은 벽송사 아래 추성에서 칠선계곡으로 오르는 코스

산청 대원사에서 무제치기 폭포로 해서 오르는 코스

팔현선생께서 즐겨오르던 코스는 마천에서 강을 건너 칠선골과 한신골 사이로 곧장 내려온 산줄기로 바로 올라 샘이 있는 제석당(단)으로 해서 제석봉 천왕봉으로 오른다고 말씀하셨다.

1961년 내가 팔현선생과 함께 채약하면서 제석봉 아래 샘이있는 제석단에는 실내가 텅빈 원룸같은 마루가 깔리고 제석천왕의 신위 위패가 모셔지고 입구쪽에 길게 신발을 벋는 흙바닥인 당집이 한채 있었다.

뒤에 커나서 가보니 없어졌는데 진주 모 대학 산악부에서 동계 칠선계곡 훈련을 마치고 이곳 제석당에서 잠자면서 마루를 띁어 불을 피우다가 산불로 소실되고 지리산에서 반야봉 북쪽의 원시림과 함께 지리산 최고의 구상나무 원시림을 자랑하던 제석봉의 숲이 불에 타버려 한때는 앙상한 줄기만 남은 구상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작가들이 줄겨찿던 명소가 되기도 하였다.

제석봉을 올라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通天門)을 통과해야 천왕봉에 도달하는데 구상나무 원목을 엮어 오르는 사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사다리를 보시고는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다리는 허우천씨가 만든거여, 세석고원 아래 음양샘에 움막을 짓고 사는 분인데 그분은 합천에서 교사생활을 하였는데 부인이 바람이 나서 나가는 바람에 세상이 허망타하고 지리산으로 입산하고 처음에는 지리산 의신(義神)에 살면서 가끔 영신봉(靈神峰) 아래 음양샘 근처를 신선들이 사는 청학동(靑鶴洞)이라고 하는 고서를 보고는 음양샘 부근에서 움막을 짓고 지내다가 빨치산으로 오인받아 고문으로 죽도록 맞았다" 라고 했다

내가 1961년도에 벽소 팔현 산막에서 가까워 가끔 가면 음양샘 부근에 제법 큰 움막을 짓고 살고 계셨고 10년이 지난 1971년 쯤 국가에서 노고단산장 세석산장 무재치기산장을 차례로 건립하고는 노고단에는 그 이듬해인 1972년 8월에 함태식씨가 관리인으로 가고, 세석산장에는 허우천선생이 산장지기로 사셨는데 내가 한국산악회에서 열성적으로 지리산을 탈 때는 가끔 지리산 남부능선의 중간 쯤에서 만났는데 그는 진주에서 버스가 들어오는 종점인 거림(巨林)에서 남부능선으로 우천선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 세석 산장에서 등산객에게 필요한 물건등을 잔뜩지고 오는 중일 때 만나면 반가워하시며 잠깐 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 아버지께서 이름을 너무 크게 하늘을 덮는 우천(宇天)으로 지어 못 산다"라고 농담으로 하셨다.

천왕봉 상봉에는 마고할미를 모신 검은 돌로 된 성모상과 마야불상이 둘러친 돌담 안에 모셔져 있었고, 서남쪽으로 조금 내려와서 둘러친 돌담으로 움막이 한채 있었는데 중산리에 사시는 무당할머니께서 이곳에 자주 오셔서 성모할미를 경배하며 관리하신 움막이다.

뒤에 듣기로는 기독교 단체가 천왕봉을 등산하고는 성모상을 칠선계곡 쪽으로 던져버려 그동안 모시면서 관리해온 할머니께서 울며 다니시며 찿기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뒤에 천왕봉 정상비를 검은 돌에다 천왕봉이란 음각으로 새긴 정상비를 세웠는데 정상비 뒤에는 천명유불명 만고천왕봉(天鳴猶不鳴 萬古天王峰) 이란 글짜가 세겨져 있었다.

원래 그 글귀는 남명 조식선생께서 지은 시구 일부를 가져다 새겼는데

해석하면 하늘이 높다고 울지만 오히려 울지않는 것이 만고에 천왕봉이란 뜻인데

남명 조식선생의 문집에는 선생께서 천왕봉에 오르시어 이렇게 표현되었다

"경상 우도의 남명 선생(1501-1572)은 경상좌도의 이황 선생과 영남유학의 두 봉우리다. 남명 선생은 두류산(지리산)을 아주 좋아하였던 듯 유두류록遊頭流錄을 썼고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다'는 피아골(稷田溪谷) 삼홍소를 읊은 시도 남겼습니다.

특히 선생의 시 제덕산계정주는 두류산을 우러르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어 그 시절의 웅혼한 지리산(두류산) 천왕봉을 올라보는 듯해 가슴이 울렁됩니다.

천석이나 들어가는 종을 좀 보아라

크게 처도 소리 없다

어쩌면 두류산 같이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으리

請看千石鐘 非大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

--題德山溪亭柱(『南冥先生集』卷之一,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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