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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인연 따라 이곳저곳 11, 지리산 천왕봉 마고할미 석상의 변천사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마고할미(麻姑婆婆)에 대한 정의는 이 세상의 자연물 또는 지형을 창조한 거인여신에 관한 설화인데 한국 마고할미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1771년(영조 47) 정한철이 쓴 '표해록(漂海錄)'이다

전설로는 지리산 마고할미(麻姑婆婆)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나는 1961년도부터 지리산 벽소 팔현산막에서 채약하며 살면서 천왕봉을 다닌 한국인으로서는 나만큼 지리산 천왕봉에 모셔진 마고할미석상과 정상표지석에 관한 변천의 과정을 자상히 아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내가 팔현선생과 처음으로 1961년도에 지리산 천왕봉에서 마고할미석상과 마애불상이 함께 모셔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현존하는 천왕봉 마고할미 석상을 가장 먼저 사진에 담은 분이 함께 한국산악회에서 몸담고 활동한 산 사진작가이신 김근원(金槿原·1922~2000년) 선생https://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2301100061이신데 진주 출생으로 선배 산악인이시다

김근원선생은 내가 중년에 설악산 사진전을 할 때 선생은 지리산 산사진 원판 20여 점을 찬조해 주셔서 볼 폼 없는 나의 사진전을 풍성하게 해 주신 분이다.

첨부한 나의 설악산 사진전의 뒤쪽 지리산 사진은 모두 김근원 사진작가 집에서 받아온 지리산 작품이다.

그리고 선생의 자택인 서울 청파동에서 가끔 만날 때 고향에 우뚝 솟은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을 많이 보여 주실 때 지리산 천왕봉에 모셔진 마고할미석상과 마에 불상을 1956년에 처음으로 찍은 사진도 보여 주시고

이 석상은 1970년대 까지도 지리산 천왕봉에 모셔져 있었다.라고 하셨다.

그 뒤로도 김근원선배는 1971년에 찍은 마고 석상에서 어깨가 갈라진 파손된 석상사진도 보여 주시면서 " 일본 놈들이 한국의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 정기를 헤손 하면서 지리산 천왕봉에 모셔진 마고할미석상도 두 동강으로 깨트리고 내려가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라고도 하셨다.

그 뒤 시멘트로 수리한 마고할미 석상도 보여 주셨으며 그 뒤 옆에 함께 모셔진 마에 불상은 없어지고 마고할미석상만 남아있을 때 나도 중년에 다시 보게 되었다.

1961년 처음내가 천왕봉에서 팔현선생과 함께 마고할미석상을 볼 때는 그 옆에 움막으로 된 당집도 있었는데 중년에 다시 찾았을 때는 마고할미석상도 움막도 볼 수 없고 돌담과 터만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천왕봉 남록 중산리에 거주하시면서 천왕봉 마고할미 석상을 관리하신 무당할머니께서 울면서 찾아다니시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천왕봉 아래 중산리에서 산장을 하는 후배 이야기로는 "기독교 단체 지리산 천왕봉 등반대회 때 마고할미석상을 북쪽의 칠선계곡으로 던져버렸다"라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87년 천왕봉 남록 중산리에 살던 혜법스님이 꿈에 선몽을 받아 계곡에서 몸 부분을 찿고 진주시 비봉산 과수원에서 머리 부분을 찾아내 복원한 뒤 이곳 지리산 천왕봉 아래 천왕사에 봉안하고 지금은 매년 음력 3월, 10월에 천왕제를 올리고 있다."라고 한다.

1961년에 팔현선생 따라다니면서 내가 본 마고할미 석상은 머리와 몸통이 그 전부터 갈라져 두 동강이었다.

꿈에 선몽이니, 찿은 곳이 몇십 리가 떨어진 곳이라 하는 것은 나는 믿지 않는다.

다만 공적인 소유물인 마고할미석상이 개인소유물로 바뀐 데는 그럴만한 구차스러운 전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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