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따라 이곳저곳 13, 지리산 천왕봉 한 바퀴
팔현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산청을 가야 한다. 가면서 생초에 사는 친구가 하는 절도 가 보아야 하고, 일몰에 사는 친구도 보고, 평촌마을에서 하숙하면서 신세 진 집에 빚도 갚아야 하고, 덕천서원 훈장도 만나고는 거림(巨林)으로 해서 지리산 천왕봉을 한 바퀴 돌아와야 한다"라고 하셨다.
형님께서 물었다.
"며칠 걸리겠네요라고 하니 "3박 4일이면 되겠지"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동안 채약한 약초 말린 것을 잔뜩 지고 마천으로 내려왔다. 마천에서 약종상을 하는 곳에 모두 넘기고, 빈 몸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임천을 따라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라 한없이 걸어갔다.
팔현선생께서 흐르는 강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이 임천이 반야봉이 발원지가 되네 반야봉 북록 심원에서 산내로 흐르고 이 산내까지 또 다른 강이 합쳐지거든 그 강이 저 인월항산대첩으로 유명한 피바위 앞으로 흐르는 강이 람천인데 이 강도 함양팔랑치에서 흐르는 풍천 하고 합처서 산내로 오면서 좌측의 만수천과 합쳐져서 내리다가 지리산 한신골에서 내리는 덕천천과 합처 제법 큰 강이 되어어 지리삼천인 마천부터는 이름이 바뀌어 임천으로 불린다네
이 임천이 지리산 칠선골에서 내리는 의탄 천과 합치고 또 오봉천과 합치고 다시 지리삼천인 두 번째 유천에서 흐르는 남강과 합치고는 아주 큰 강이 되어 여기부터는 산청군이 되니 강 이름도 바뀌어 경호강이 된다네 흐르고 흘러 진주부터는 남강이 되어 남해바다로 흐르는 거야"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높은 산이 많은 지역은 강 줄기를 알아야 산맥의 줄기도 아는 거지"라고 하셨다.
마천에서 동쪽을 가시면서 좌측의 둥구마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둥구마을 큰 애기(처녀)들은 태어나서 쌀 한말 못 먹고 시집간다라고 했어 이곳에는 논이 전혀 없어"
다시 걸어가다가 북쪽 뒷산을 가리키며 저 산 위에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남쪽 천왕봉 쪽으로 보면 주 능선이 부처님께서 누워있는 모습과 같아 보통 와불상이라고 하면 부처님께서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인데 견불동에서 보는 것은 바로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야 그래서 부처님을 보는 동내라 해서 이름을 견불동(見佛洞)이라고 하지 "라고 하셨다.
곧장 강 따라 내려가다가 강을 건너 우측 큰 계곡으로 진입하시면서 여기서부터 약초를 캐면서 산을 넘어 생초로 가자"하셨다.
우리는 마을이 끝나는 쯤에서 깊은 계곡에 돌무덤이 있는 곳에서 짐을 풀었다.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은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양왕(讓王)의 무덤인데 김유신(金庾信)의 증조부 되시는 왕이야" 하셨다
둘러보니 돌을 한데 쌓아놓은 돌무덤인데 앞에는 감실(龕室)도 있고 아주 큰 돌무더기였다.
팔현선생께서 주무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내일 일찍 출발해서 산을 넘으면서 채약하고 생초 절에 있는 스님을 만나 전해주고, 다시 걸어서 일물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 지게 되지"라고 하셨다.
우리는 다음날 계곡으로 해서 산을 넘어면서 채약을 하고 버섯도 따고 해서 생초에 도착했다.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생초부터는 산청군이라 이름도 바뀌고 이 강을 경호강이라고 부르네 이곳 생초가 가장 깊고 넓게 흐르는 곳이라 민물고기 매운탕이 일품이지" 하시고는 식당에서 점심으로 민물매운탕을 시켜 식사하시고는 뒷산을 한참 올라가니 집도 절도 아닌 움막 같은 곳에 뒤편이 마을 상수도 집수통이 보이는 곳에 사시는 스님인데 팔현선생과 옛날 함께 지내다가 팔현선생은 구례 화엄사에서 승려가 되고 이 분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시고, 또 한 분은 이곳에서 야산을 넘으면 일물이 나오는데 이분도 팔현선생과 함께 지낸 분이신데 지금은 산에 사시면서 약초 캐면서 사신다"라고 했다.
일몰에 사시는 분도 만나보고 두 반째 잠자고 산청을 지나오면서 말씀하셨다
산청은 약초로 유명하고 허준의 활동무대라고 하시면서 웅석봉과 지리산 사이로 길이 있는데 죽 내려가면 평촌마을에도 들리고 그 아래 마을인 덕천서원에서 잠을 자기로 한다"라고 하셨다.
산청은 약초꾼들이 많고 진주가 가까워 진주에서도 약초 캐는 사람들이 많아 이 잡듯이 캐버려 우리는 그냥 죽 내려가면 되네'라고 하셨다.
우리는 평촌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여 팔현선생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 한분과 내 또래의 처녀가 있었다.
팔현선생께서 사상운동을 하시다가 검거를 피해 한 때 머문 집이 라고 팔현선생께서 가끔 말씀하시기를 "내가 평생 잊지 못하고 빚을 갚아도 못 갚는 곳이며 나의 목숨을 살려준 분이다"라고 하셨다.
평촌을 떠나 덕천서원으로 가면서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때로는 잘못하여 숨을 때도 있는 거라 산속에 숨는 것도 좋지만 마을에 숨으려면 젊은 과부집이나 아니면 그 집에 처녀가 있는 집에 머무는 것이 제일 안전하지 마을에서 소문은 더럽게 나지만 안전하고, 대문 옆에 딸린 방에 잠자면 대문밖에서 말하는 것도 듣고 도망가기도 쉬운 거라"라고 하셨다.
우리는 덕천서원에 도착해서 훈장님께서 소개해 주신 민간집에서 하룻밤 자고 팔현선생은 덕천서원에서 주무셨다.
다음날 가면서 팔현선생께서 "이번 겨울은 거창을 가지 않고 덕천서원에서 지내기로 했네" 하시고는 "나에게 서법과 한문을 가르치며 지내자"라고 하셨다고
걸어가다가 삼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지리산 최고 종점인 거림에 내려 남부능선으로 올라 세석고원을 경유 벽소 팔현 움막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