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현선생께서 여름부터 자주 말씀하셨다.
"가을 되면 일찍 덕천서원으로 가야 한다" 하시고는 추석 지나고 덕천서원에 가서 우리가 머물 곳에 구들을 새로 놓고, 여름 장마에 허물어진 담도 쌓고, 비가 새는 기와 보수도 하고, 집도 수리하면서 지내다가 늦가을에 함양읍 변두리 상림숲과 가까운 운림동에 집을 마련해서 옮겼다.
형님이 물었다
"덕천서원에서 경전 서법 가르치며 겨울을 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물으니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곳은 초보자가 한학을 익히는 곳이 아니라 각 지방에서 선발된 수준 높은 실력자들이 공부하는 곳이라 내가 가르치기는 어렵구나 그리고 가르치기로 하면 경전 한 권은 마치고 책거리하려면 시간이 맞지 않아 그만둔 거야" 하시었다.
다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일본도 유학하시고 6개국 나라언어도 하시는데 왜 실력이 달린다 하십니까?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셨다
"학문에는 주의 주장은 물론 각 학파의 전통적인 해석이 있는 거야, 가령 공자의 유학은 현실에서 충효와 보이고 만져지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에 입각한 해석이어야 하는데 그곳에서 노자나 선가의 입장인 청정무욕이나 겸하부쟁과 같은 현실을 떠난 자연주의의 설명과 논리로 해석하면 먹히질 않는 거야, 특히 불교의 삼세인과설이나 심성적인 해석은 맞질 않아 그만둔 거지"
"그래서 팔현선생께서 포기하셨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곳에서는 공맹의 도나 주자학파의 설명 이외는 하지 말라고 했어, 나는 오히려 주자와 동시대에 사시면서 반대적인 논리로 해석한 육상산 선생이나 왕양명 선생 같은 분이 주장한 불교적 입장이 더 마음에 와닿거든 그래서 이쯤에서 선을 넘지 않고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거야" 하시었다.
나도 물었다.
"함양에서 집을 마련했으니 이제 어떤 일을 하시려고요?"
팔현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내 칼도 남의 칼집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못하는 거야 그래서도 안 되고..." 하시고는 "여기서는 약초 캐는 채약만 빼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한번 펼쳐보려고 한다"라고 하시었다.
팔현선생께서는 그동안 산에서 하시던 대로 제연(制鉛), 제은(制銀) 제사(制砂) 제홍(制汞)을 법제해서 만드시고, 보약으로 금정(金精)과 경옥고를 만드셨다
특히 도꾼들에게 사용방법을 자상하게 적어 주시면서 9가지 변화되는 순서를 당부하셨는데 내용은 모르지만 수첩에 적혀있어서 소개하면
一轉過關死汞養紗 - 二轉丹紗變化 - 三轉烹白雪 - 四轉造玉金砂 - 五轉紫粉養黃礜 - 六轉金汞養金砂 - 七轉紫金養金蠶 - 八轉金蠶養黃礜 - 九轉黃礜養神府로 된다"라고 하셨는데 그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도꾼들이나 알까 나는 모르겠다.
한자의 뜻을 생각하니 아마 영사(靈砂)와 수은(水銀) 피워 법제하고, 도꾼들에게 이미 주문받은 은과 구리를 구워 양생 하시는 분들에게 주시면서 몸이 변화되는 과정을 아홉 가지로 나눈 것 같다.
그리고 대문에 간판은 부치지 않으셨지만 마을이름이 좋다 하여 운림서실(雲林書室)이라 적어 마루 벽에 붙이시고, 이미 거창읍에서 하셨던 대로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은 무료로 한문, 서법,, 산술,, 영어등 신학문도 가르치셨고
"배워야 남녀평등 인격평등이 오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