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현선생은 그렇게 훌륭한 식견과 인격을 갖추고도 세상에 나오시지 않으셨다
고향이 어디인지?, 왜 입산하여 은자(隱者)로 하셨는지?, 그리고 일본 유학에서 배운 현대적 사상과 학문, 그 많은 역(易)의 철학과 구들과 서법을 어떻게 아셨는지? 왜 그 좋은 글씨 한 점 남기지 않으셨는지가 지금 와서도 의문입니다
팔현선생과 함께 떠돌이 생활하던 시절에는 집 없는 서러움이 비가 올 때면 더욱 생각납디다.
집 없이 다닐 때는 바위 아래나 움막에서 솥이 없을 때는 포대에다 쌀을 넣어 흐르는 냇물에 담가 불킨 쌀을 바닥에 묻고 그 위에 모닥불 피워 잠자기 전 꺼내 먹고 모닥불 쓸어버리고 그곳에 가마니 깔고 구들방 같이 따뜻하게 잠자곤 했습니다.
한 철 살 때는 골 함석말아 고래 만들고 그 위에 자갈과 모래흙 낙엽 순으로 덮어 아궁 만들고 마른 싸리나무로 불 피우면 연기도 나지 않아 은자로 살기는 적격입니다.
이불이 없다면 산꼭대기에 자라는 실같이 가는 풀 베어다 말려 방속 가득 넣고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가 잠자면 숨쉬기에 불편함도 없고 극한 추위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불 밝힘은 ㅅ썩은 소나무 간솔 줒어다 벽에 코쿨 만들고 그 속에 불 피워 겨울철 긴 밤에 보조 난방과 불 밝힘으로 살았으며
산속 한 곳에서 오래 있을 때는 큰 바위 아래에 주위의 돌을 주워다 벽을 쌓거나 굴을 파고 조그마한 구들방을 만들어 생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팔현 선생께서는 "거지는 모닥불에 살찌는 것이여"라고 하시면서 추워 나무를 많이 넣으면 높은 불길로 인해 앉은자리에서 뒤로 물러나곤 하면 이미 따뜻하게 만든 몸뚱이를 움직여 몸이 식는 나에게 나무를 아끼라는 말씀으로 그리했었습니다.
긴 겨울나기를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고, 배 고플 때 참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며, "배고플 때 물이라도 많이 마셔둬라 그래야 나중에도 많이 먹을 수 있다"라고 하셨고 거지는 있을 때 많이 먹고 없을 때 불평하지 않는 거다" 거친 음식 먹을 때는 "입이 밥빌러가지 음식이 입빌러가지 않는다"라고도 하셨습니다.
비를 맞더라도 체온을 유지하는 비상식량으로 독한 술에 맵쌀로 만드는 방법이며, 언제 비가 올지 그칠지 "식전비는 아침 해 뜨면 그치니 한양길을 떠나라" "소낙비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햇무리 달무리가 있으면 비, " "저녁노을은 맑고, 아침노을은 비, " "동풍은 비 서풍은 맑음, " "아침 안개는 낮에 맑아 중 머리 볐긴다." 이러한 경험에서 나온 관천망기에 관한 지식도 알려 주셨고,
때론 모닥불에 꾸운 따뜻한 돌멩이를 수건에 싸서 나의 품속에 넣어 위로해 주셨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 약초캐면서 땅꾼 석청꾼으로 주로 지리산을 누비는 팔현 김득수 선생을 따라다녔습니다 뱀들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11월부터는 할아버지의 하시는 말씀이 "독사는 겨울이 다가오면 산 위로 기어올랐다가 다시 내려가거든 그때 잡아야 약 효험도 좋고 독도 재일 많거든" 하시면서 겨울나기 준비를 할 요량으로 시도 때도 없이 뱀 잡는 일을 하셨다.
그리고는 11월 모든 추수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콩 타작을 하는데 "메주콩을 한 알 한 알 먹으면 비린내가 나니 한 줌 가득 입에 넣고 먹어야 냄새가 나지 않아"하신 말씀도 생각나고
늦가을 살얼음이 어는 때부터 구들방 수리가 시작되는데 현금을 마련해야 겨울을 나기에 쉬지 않고 노동을 하셨습니다. 마을을 다니면서 구들 고치고 기와 고치는 일을 많이 하면서 그때 얻어 들은 말들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치에 맞고 사리에 맞는 말이었습니다.
옛날에도 숨어 사는 은자는 세상에 뜻이 없어 그들은 산이나 숲, 물가에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 그들의 뜻을 담고 살았고
세상을 피해 산이나 숲에서 살았기에 은자(隱者)는 삶의 자취나 이름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듯이 팔현선생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덕으로 품어 보호해 주시고 한평생 삶의 터전인 구들과 서법을 알려 주시고 떠나신 팔현 김득수 선생도 그렇게 자취를 남기지 않고 떠나셨습니다.
팔현 서법을 창안하셨지만 나에게만 가르쳐 주셨고 팔현의 이름도 내가 구들연구소를 하면서 스승에 대한 보답으로 지어드린 이름이지 주위에 이름을 남기지 않으셨으며 나도 선생의 이름을 한참 뒤에 알았습니다
칠선골에서 채약하면서 마지막 선생의 죽음을 맞이하면서까지 해탈하신 모습으로 화엄사 주지에게 의탁하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 뒤로 성장하면서 더 좋은 환경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 나서면서도 주위의 좋은 환경에 비해 마음이 넉넉한 분들은 김득수선생 말고는 못 만났습니다.
그렇게 나도 연자제에 묶여 어린 시절 먹고살고 숨어 살기 위해서 산을 탔었고, 그때의 버릇을 못 버려 그 뒤에도 산을 엄청 많이 탔었고 해외 히말라야, 알프스, 코카서스 등 해외 원정도 많이 하고, 그때의 명성으로 등산장비 전문점까지 하면서 번 돈으로 애들을 키우고 교육시키기도 했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팔현선생으로부터 구들 놓는 법을 배워 지금도 구들연구소와 교육으로 먹고살고 있습니다.
팔현 선생은 진정 이 시대의 몇 안 되는 기인이셨고 상글리라(Shangri-La) 이상 세계를 펼치시려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시고 가신 어른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