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요사체에 불 안 들어가서 방이 따습지 않는 구들방을 고치고 나서, 여러 스님 대중이 함께 방 따습기를 확인하면서 주지스님께서 "수고했다 하시고 큰상을 줘야겠구나'" 하셨는데 기다려도 상은 내리지 않고 계속 화엄사 불 안 들이는 방을 몇 군데 고치고, 구들 잘 놓는다는 소문이 나서 주위의 다른 사찰의 방도 원정 가서 고치는 일도 하였다.
시간이 흘러 한번은 주지스님께서 방으로 부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너는 승복 입기를 싫어하는 것 보니 중노릇 하기는 어려워 보이는구나" 하시고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복을 짓고도 모른 체하는 것이 없어지지 않는 무류(無漏)의 복이고, 최상의 복이 된다."라고 하시고는 금일봉을 주시면서 그동안 구들 율력 하느라 수고했다. 너도 돈이 필요할 것이니 헛되게 쓰지 말고 우체국 통장하나 만들거라" 하셨다. 그리고는 원정 가서 구들 놓고 받은 돈을 가져다 드리면 "네가 애써서 받은 돈이니 넣어둬라" 하시면서 가끔 금일봉을 주셔서 입금하라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니 너도 세상과 혈연이 박복한 인연이고, 이왕 나와 사제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내가 주는 것이 절의 공금이 아니고 나의 용돈에서 준 것이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라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자비의 은덕으로 감싸주시면서 이생을 넘어 내생까지도 대중에게 빚 되지 않도록 하시고 개인적으로 복되게 하신 마음 넓게 쓰신 스님이시다
하루는 주지스님께서 스님 한 분과 나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곡성 태안사 구들방 고치고 오너라" 하셨다.
스님 따라 구례에서 버스로 압록에 내려 서쪽으로 난 강을 따라 한없이 걸어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강을 건너 강변으로 한참 가니 허름한 법당과 요사체가 나오는데 이곳이 태안사라 했다.
지금 와서 기억은 별로 없고, 사찰이름과 같이 크게 편안한 절터구나 하는 생각과 절입구에 나무를 조각한 큰 물고기를 걸어놓은 것만 생각나고,
태안사 주지스님께서 말씀하신 "몇 년 전에 이 절 법당 다락에 빨갱이라고 오해받은 많은 마을사람들이 숨었다가 군경의 총에 죽었는데 법당 안이 피바다가 되었어, 그래서 절이름은 크게 편안한데 이름같이 태안(泰安)이 못되네"라고 한 말씀과
"이 절은 창건주가 적인(寂忍) 스님인데 텅 빈 마음으로 참으라는 뜻이 의미심장한 거야"라고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는 것은 나도 그 당시에 연좌제라는 것에 걸려 이곳저곳 옮겨 다닐 때라 동질감을 느끼고 울면서 구들방 고친 기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사찰이다.
또 한 번은 주지스님의 지시로 아주 멀리 경상도 합천 해인사에 가서 구들방을 수리하고 왔다.
그곳에서는 관광지인 화엄사와 다르게 공부하는 분위기에 구들 놓다가도 청강할 수 있는 시간에는 청강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화엄사에서 배운 초발심자경문은 우리나라 고승들이 지은 처음 절에 출가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법규 같은 것이지만 해인사에서 배우는 경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교(四敎) 중에 능엄경(楞嚴經)을 강설하시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들어오는 말씀이었고, 나도 출가해서 심취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던 기억이 새롭다.
몇 마디 생각나는 법문은 "능엄경은 단단해서 이름하기를 차돌같이 단단한 차돌경이다." 이 말씀은 내가 구들돌을 만지니 더 실감 있게 들렸는가 보다
그리고 삼법인(三法印)과 경(經)을 연결 지어 능엄경을 강설하시면서 "제행무상은 우주를 논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경이 화엄경이고, 열반적정은 죽음과 내생을 다룬 것인데 경은 법화경이고, 제법무아의 마음 닦는 경을 다룬 것이 능엄경인데 죽은 뒤의 내세나 허망한 우주를 아는 것은 별로 급하지 않지만 오직 출가수도인은 마음 닦는 제법무아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데, 이 마음 닦는 경이 능엄경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나도 희열심과 분발심이 나서 청강하느라 구들방을 오래도록 작업하였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54세에 모든 것 접고 강원도 낙산사 앞으로 귀농해서 살 적에 낙산사 주지인 마근, 정념스님이 한때 해인사에서 조계종 종정이신 윤고암스님을 뵙고 구들도 놓고 청소도 하며 청강을 하면서 며칠 지냈다라고 하니 윤고암스님의 동문제자라고 처음 귀농해서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뒤에 나도 능엄경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능엄경의 대의를 한마디로 축소하면 "마음을 거둬들이는 섭심이 계다(攝心而戒)"라고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