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들방을 다루면서 습관이 되어버린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처음 집을 방문하면 아궁과 굴뚝을 연결해서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해인사 삼선암이 비구니 스님이 사는 줄도 모르고 삼선암에 들어가서 아궁이는 그 집의 깊숙한 곳에 살림살이가 진열된 곳이고, 굴뚝은 집 뒤편에 은밀한 곳인데도 모르고 굴뚝을 보기 위해 그냥 혼자 들어가 보고 나오는데 들켜 도둑으로 오인받기 직전 "나는 화엄사에 사는 사람이고, 해인사에 구들방 고치러 온 사람이라고 주지스님게 연락해서 알아보라"라고 해서 오해가 풀린 적이 있었다.
그 뒤에 삼선암에도 고칠 방이 있는지 물으면서 둘러보았는데 삼선암 뒤편 굴뚝이 여러 개 줄지어 있고, 그 옆에는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과 그 아래 마당에 바가지 샘이 있는 모습이 꿈에 가끔 큰 절집 같기도 하고 서당 같은 집이 보이는데 그 집의 뒤편 모습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들려 보면서 생각해 보고 하는 것이 이상했는지 금태 안경을 낀 비구니 주지 스님(그곳에서는 원장님이라 부르셨다)께서 "왜 그러느냐?"라고 물으셨다.
"예 제가 가끔 꿈에 나타나는 집이 있는데 그 집 뒤편 모습과 산으로 오르는 길과 바가지 샘이 똑같아 이상해서 보는 중입니다"라고 하니
삼선암 원장스님께서 마루에 서서 허허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충격적이었다.
"처사님께서 전생에 비구니 스님이었지요"라고 하셨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잃고 어머님은 다른 곳으로 재가 하셨기에 여성을 혐오하며 기피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기분이 상해 삼선암에서 두말하지 않고 나와 버렸다.
해인사에서 구들 놓으면서 일하는 일꾼을 마을에서 수배했는데 마침 서울에서 아파트 공사판에서 일하던 사람이 고향에 잠깐 내려온 이를 쓰면서 친해지고, 스님들도 친해지기도 하고 내가 화엄사에서 왔고 해인사 요사체 구들방을 수리하는 것을 알고는 식구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그 당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으로 계신 분 처소에 청소도 몇 번 하면서 윤고암이라는 종정스님을 뵙게 되었는데 바짝 마르고 크지 않은 체구에 앉자 계실 때는 꼭 얌전한 여성분 같은 외모에 하시는 말씀도 차분한 여성 같은 기억이 난다
***.https://blog.naver.com/sowoozee/223908506117 옛날 빚 갚기도 힘들다네. / 고암 스님)
내가 장성해서 강원도 양양 낙산사 정문에서 600m 되는 곳에 터를 잡고 살고있는데 낙산사 주지인 정념스님과 전 주지 마근스님도 과거 해인사 윤 고암스님의 문화에서 공부했다고 같은 동문이라 하면서 낙산사에서 과일도 가져오고, 마근주지 스님은 당료로 고생한다고 고향에서 보리쌀도 몇 포대 싣고 오시면서 주시고, 땔나무도 차에 싣고 오시고, 동지 팥죽날 큰 양푼에 팥죽을 가득 담아 오시기도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스님의 토굴에 구들도 놓아드렸는데 모두 다 나보다 3살 연하의 스님이다.
이 스님들의 자비보살 행적의 내용은 기회되면 30여편 올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