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구례 화엄사에서 밤에는 사찰 소유의 산에 소나무를 구례사람들이 베어가지 못하게 지키면서 낮에는 주위의 사찰에 구들을 놓고 그곳에서 사례금으로 주는 돈과 주지스님께서 가끔 주시는 용돈을 우체국 통장에 저축한 것이 몇백만 원 되었고,
해인사 구들수리하면서 일꾼으로 만난 분이 서울 암사동에서 아파트 짓는 곳에서 일한다고 기회 있으면 만나자고 주소를 주고 헤어진 것이 자꾸 생각나서 이제나 저제나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고, 역마살 끼가 있는 내가 화엄사를 떠나겠다고는 마음은 먹었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나의 행동에 눈치를 체신 주지스님께서 하루는 방으로 오라 하셔서 갔더니 물어셨다
"돈은 좀 모아졌느냐?" 하며 물으셨다
"예 통장에 몇 백만 원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은 하였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며 주지스님께서 내 마음을 어떻게 아신 것인지 더 이상 속일 수가 없었다.
"주지스님, 그동안 팔현선생과 지리산 벽소 산막에서 외롭게 살았고, 절은 너무 적적 고요해서 넓은 세상 한번 보고 싶어서 서울로 가야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주지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나갈 때도 되었으니 한번 가봐서 넓은 세상도 보면 좋지 "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절대로 나 이외는 절에서 떠난다고 인사하지 말거라 그리고 혹 누가 묻거든 다른 절에 구들 놓으러 간다고 하거라" 하시었다.
그리고 화엄사를 떠나면서 주지스님께서 두툼한 금일봉을 주시면서 "보태거라 넓은 세상 보려면 노자돈이 많아야 될 터이니..." 그리고 "다시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너라 바깥세상 안세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곳에서도 넓은 세상 볼 수도 있고, 나는 다른 절에 구들 놓으러 보냈다고 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내가 떠나는데도 끝까지 챙겨주시고 나와 인연을 놓지 않으려고 하신 주지스님을 생각하면 눈물 나고 어금니를 깨물게 하던 마음 넓고 따뜻하신 주지 스님이셨다.
구례에서 기차 타고 서울에 도착하고 보니 이른 새벽이었다. 역 밖 길에 포장 친 곳에서 아침을 사 먹고 해인사에서 함께 구들 놓으면서 적어준 주소를 가지고 찾아갔다
지금생각하면 그 동네가 말죽거리라기도 하고, 암사동 부근인데 허허벌판에 서울시 인구분산 정책으로 시영 아파트를 처음 짓는 중이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사현장은 땅을 파 해져 놓은 곳에 비가 와서 질퍽거리며 여기저기 아파트가 1층 또는 2층 서로 경쟁하듯 올라가고 있는 곳 한편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음식을 하는 함바집에서 아저씨를 만나니 부산에서 무임승차로 서울 가다가 영동역에서 차장한테 잡혀서 영동역에 인계되고 다시 고향으로 걸어 내려오다가 거창에서 팔현선생을 만날 때와 같은 심정이라 가슴이 뭉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