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장 씨 아저씨가 하는 비계(아시바) 공 보조역을 하면서 서울 시내 여러 현장을 한 달 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일이 끝나고 함바집에서 장 씨 아저씨가 돈을 요구했다.
환영회식비로 받아가고
노조가입비로 받아가고
공구비 시누와 절단기 안전벨트 등 공구비로 받아가고
숙박비와 식비로 받아가고
그리고 월급 타면 바로 갚겠다고 돈을 빌려가고 해서 함께 따라다니면서 비계(아시바) 공 일을 하였다.
지금은 쇄 파이프로 작업현장 건물 주위를 사람이 안전하게 다니고 작업할 수 있게 발판으로 비계(아시바)를 엮지만 그 당시에는 나무 중에 곧고 가늘고 키가 큰 낙엽송으로 해서 반생으로 역어 나가는데
이 마른 낙엽송 껍질은 조금씩 벗겨지면 모두가 바늘같이 까시로 변해 피부를 파고드는 것이었다.
한동안 높은 곳에서 매달리어 서로 잡고 엮어나가기 때문에 보조를 맞추고 떨어지지 않아야 하므로 처음에는 비계(아시바) 목인 무거운 마른 낙엽송을 가슴에 안기도 하고 발로 비계(아시바) 목을 감싸기도 하고, 내려가지 못하게 한쪽 팔뚝은 미리 안전하게 조립된 비계(아시바) 목에 확보하면서
한쪽 팔뚝은 비계(아시바) 목을 감싸기도 하고 내 몸을 발판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매달려 비계(아시바) 목을 올리고 내릴 때 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붙잡다 보면 온몸에 까씨가 박혀 피부가 벌겄게 붓고 아프고 씨리고 고름이 생기게 되었다.
여러 작업자 중에 돈은 많이 받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어서다.
이 비계(아시바) 공은 원래 "원숭이가 이나무에서 저나무로 뛰다"라고 한다며 그 당시에는 모든 작업하는 이름이 일본말이라 일본말로 "사루도비 사스게"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작업현장이 높아갈수록 위험부담이 있고 작업에 익숙하지 못하여 그만두어야 할 것 같고, 일하다 보니 다른 현장에서 " 비계(아시바) 공이 떨어져서 사고를 당했다"라고 들리기도 해서 어느 시점에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월급날이 되어 회사에서 세화라는 직책의 노임관리하는 분이 다른 사람에게는 월급을 주는데 나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다.
뒤에 알고 보니 비계(아시바) 공은 회사에서 고용한 인부가 아니고 노임도 미리 우끼도리(한꺼번에 맡음)라고 일감의 종류와 양에 따라 한꺼번에 노임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쉽게 현장일을 할 수 있었지만 장 씨가 나에게 노임을 주지 않았던 거다.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친구도 생기고 작업 요령도 생기고 하였는데 장 씨가 나에게 받아간 모든 돈이 숙식비와 공구비 이외는 모두 사기를 친 것이다.
알고 나니 믿을 사람이 못되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빌려간 돈을 몇 번 돌려 줄라고 하였는데 결국 받지 못하고 헤어지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함바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아는 사람에게 내가 물었다.
"어떤 일을 해야 비계(아시바) 공 같이 높이 매달리지 않고 안전하며 돈을 많이 받는가?"라고 하니 콘크리트 믹서 공이다"라고 하면서 돈을 많이 받는 대신 힘은 많이 들지만 아침 9시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5시면 끝난다고 하며 그곳 구미(팀)에 소개해 주었다.
내 나이 21세에 청계천 삼일고가도로가 시작되고 마포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최현욱 서울 시장이 사퇴하고 하던 시기라 콘크리트 믹서 공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이렇게 해서 처음 금쪽같은 나의 돈을 허무하게 사기를 당한 노가다 입참 신고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