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일하던 말죽거리 건축 현장은 서울시에서 인구분산 정책으로 짓는 시영아파트라고 했다.
그리고 성남에서 하던 건설현장도 서울시 인구분산정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 서울시장인 최현욱시장은 박정희의 오른팔로서 불도저 같은 건설추진으로 청계천 3.1 고가 도로가 1967년에 시작되고 다음 해에 마포 와우산에 군인들이 짓던 와우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건으로 31명이 사망하고 그에 책임을 지고 최현욱 시장은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내가 서울에 처음으로 와서 건설현장에 일하다가 그만두고 전주 덕진 잠종장에 근무하면서 은산육영재단에 들어간지 2년
후에 일어났다
서울시는 인구가 늘어남에 인구 분산정책으로 한강아래 처음으로 시영 아파트를 짓기 시작할 때 건설업 단종면허가 있는 사장이 국가로부터 도급받은 종합건설 회사에서 다시 아파트 한 채씩 도급받아 짓던 시절이었다.
이때가 가장 혈기왕성한 청년시절이라 모든 건설현장에서 수작업으로 사용되는 콘크리트 믹서 공은 대단한 인기였다.
그 후 다시 인구 분산정책으로 성남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남에서도 건설현장에 투입되었다.
건설현장에서는 본사에서 건축자재를 공급받는데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건축자재를 수급받는 일이고, 그다음에는 건설기계를 날짜를 정해서 공급받는 일이고, 셋째는 현장에서 작업을 용이하게 하는 보조장비를 공급받은 일이었다.
예를 들면 신축 건설현장은 비가 오면 장화를 신지 않으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차량도 다니고 해서 질퍽거리는데 이곳에 자재를 실은 니어카를 민활하게 다니게 하려면 구멍이 슝슝뚤린 넓고 긴 발판(아나방)을 각 아파트 현장마다 부족하게 지급하는데 밤이면 길에 깔아놓은 발판을 훔치는 일등이 일어나기에 날마다 싸움이 생긴 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현장 밥집인 함바에서 수건과 담배 술을 파는데 술이 들어가면 작업하면서 불만불평으로 쌓인 감정이 생겨 마시던 사기 물컵을 던져 머리가 깨지고, 한바탕 실랑이가 일어나는데 나는 체질적으로 담배와 술을 못하는 체질이라 나와 함께하는 콘크리트 믹서 공에서는 힘쓰는 일로 작업 중에도 생 돼지고기와 술을 먹어야 힘이나기에 아파트 공사장에서도 악명 높은 팀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 공사현장에서 각 분야의 일꾼들의 인간성을 빗대어 말하기를
"목수 양반, 철근 쟁이, 콘크리트 놈" 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콘트리트 믹서를 하다 보면 바닥에 철근이 깔리어 콘크리트를 실은 리어카가 다닐 수 있도록 발판 작업을 하는데 가끔 목수에게 톱이나 망치 못 빼는 빠루를 빌려 쓰는데 목수가 톱은 잘 빌려주지 않고, 망치나 못 빼는 빠루 같은 것은 빌려 주는데 목수가 거만하거나 간식거리로 돈을 주지 않으면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형틀인 거푸집을 조립한 곳 모서리를 콘크리트를 가득 실은 니어카로 붇다가 일부러 받게 해서 망가트리면 그 실수는 모두 목수에게 돌아가므로 항상 콘크리트 믹서 공은 목수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그래서 목수가 간식거리라도 주지 않는 날에는 빌린 못 빼는 빠루를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기둥에 박아 넣고 머리만 나오게 해서 시멘트 포대 종이를 덮어두면 다음날은 빠루 머리만 보이지만 콘크리트가 굳어 빼지 못하고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전기 공도 마찬가지다 전기 공도 콘트리트 믹서 공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전깃줄을 넣는 전선관 구멍을 연결하는 철 박스를 콘크리트를 가득 실은 니어카로 받게 해서 전선관 연결 철 박스가 날아가면 다시 콘크리트를 붇기 전에 고쳐야만 다음에 전선관으로 전깃줄을 넣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전선을 넣지 못하여 낭패를 본다
더욱 심한 용심이 많은 사람은 일부러 콘크리트를 타설 하면서 넓은 각삽에 콘크리트 물을 전선관으로 들어가게 붓고 있어 다음날에는 전선관이 콘크리트로 막혀 전기 공은 일을 망치게 한다
방수 공도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옥상이나 방수에 민감한 부분에 비닐 줄을 길게 잘라 넣고 콘크리트를 타설 해서 마감하면 마지막 방수작업을 할 때 빗물이 새는데 빗물새는 부분에서 아무리 누수되는 곳을 방수해도 방수가 되지 않는 이유가 빗물 새는 부위에서부터 길게 묻혀있는 비닐 선을 타고 누수가 되므로 찾기도 어렵고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방수 공은 알마딘 같은 값싼 방수액으로는 할 수 없고 에폭식방수라고 고액이 들어가는 여러 겹 층을 지으면서 방수 방식으로 새는 빗물을 새지 않게 잡아야 하므로 해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옛날에는 레미콘 작업이 없었고 모두 다 나무 질통에 모래 자갈을 지고 올라가서 수작업이므로 작업환경상 최상위는 항상 콘크리트 믹서 공이 되므로 앞에서 말한 일들을 당한 곳에서 콘크리트 믹서 공을 부르기를 "콘크리트 믹서 공은 상종하지 못할 놈이다"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이 콘크리트 믹셔공에 몸담고 작업할 때 체구가 왜소하다고 물 단도리나 시멘트 운반이나 하라고 하였지만 어릴 때 가난한 시절 해운대 동백섬에서 자맥질해서 소라 전복 군수를 잡아먹으면서 단련된 심폐기능이 좋고,
지리산에서 팔현선생과 약초 케면서 높은 산을 많이 타면서 단련된 다리 힘과 산속 무당들에게 제공되는 무거운 씰과 과일을 많이 진 관계로 콘크리트 믹서 공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모래자갈을 지는 질통꾼으로 바로 등극을 해서 돈도 많이 받았다는 말을 하면 믿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비록 몸은 왜소하지만 항상 내 배낭이 다른 사람의 배낭보다 2배는 무겁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