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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逢恩師1947~1968

또 다른 배움(政敎同心) / 10, 다시 구례 화엄사로 내려가다가 덕진역에 내리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속담에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지 넓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라는 말은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인데, 체질적으로 술 담배를 못하고 소심한 성격의 나는 거친 건설현장에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댈 곳 없고, 연좌제에 묶인 나로서는 제도권에서는 배우지 못하고 취직이 되지 않아 그나마 비제도권인 종교가에서 공부와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구례 화엄사로 다시 내려가는 중이다.

그 당시 건설현장에서 다양하게 배우고 경험한 건축기술인 비계, 조적, 미장, 콘크리트 믹서, 삽질, 곰방, 전기, 페인트, 방수, 철근 등을 배워서 박복하지만 나는 이러한 기술로 80 평생 먹고살았다.

배움이 적고 설사 배움이 많다 해도 쓰일 수 없고, 쓰인다 해도 나에게는 진급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돈이 되는 것은 노동으로 해서 되는 것이지 배운 학식으로는 돈이 되지 않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술 답배와 먹고 마시면서 어울리지 못해서 건설현장에서도 외톨토리였다.

건축현장에서의 진급은 사장밑에 소장, 기사, 세화, 십장, 기공, 조공, 잡부 순으로 이어지는 건설현장에서 진급을 하려면 그곳에서도 정치수단이 필요한데 정치는 곧 돈으로 연결되고 건모술수로 되는 것임을 알고는 건설현장을 떠나기로 하였다.

오히려 오기 전 구례 화엄사에서 밤에 절 소유 소나무지키며 낮에는 구들 놓고 일하면서 저축된 돈이 깨끗한 돈이며 더 대우와 칭찬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가자 돌아가야지" 하며, 나도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처럼 귀거래(歸去來)를 한 것이다.

서울에서 전라선을 타고 구례 화엄사로 가면서 옆에 앉은 중년의 아저씨가 먹을 것을 내놓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없던 터라 경상도 사투리로 대답하는 나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디까지 가는가?"

"구례까지 갑니다"

"전라도 말씨가 아니니 혹 그곳에 친척이라도 사는가?" 더 이상 숨길수가 없어서 그동안 건축현장에서 하던 일과 그전에 지리산과 화엄사에서 보낸 일들을 말하였다.

오랜 시간 함께 내려오면서 심심도 하고 이야깃거리가 없어 주고받고 이야기로 심심찮게 내려왔다.

아저씨는 전라북도에서 누에 종자를 만드는 국립 잠종장(잠업시험장)에서 전국 농촌 4-H 청년들에게 잠업을 위해 교육을 담당하는 오주임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함께 생활해 보지 않겠냐?"라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구례 화엄사에 내려가도 옛날 주지스님께서 계신다는 보장도 없고, 서울에서 생활했지만 성공도 못하고 내려가는 내 처지가 부끄럽기도 하고, 화엄사 절생활은 이미 경험해서 뻔히 알고 있는 터라 새롭게 다시 도전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오 주임과 같이 함께 살기로 하고 덕진역에 내렸다.

지금은 덕진이 전주 도시 한가운데 번화가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변두리인 덕진역 뒤에 잠종장(잠업기술연수원)과 넓은 뽕나무 밭이 있었고 옆으로는 전북대학교와 담하나로 나누어져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내가 근무하던 잠종장이 완주군 봉동 가기전 초포라는 곳으로 이전을 하였다고 들었다.

내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중에 가장 오래되고 하나뿐인 사진인데 그 당시 잠종장(잠업시험장) 뽕나무 종류의 이름이 적힌 푯말을 세우고 견본으로 심어놓은 뽕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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