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라도에 산 것은 나에게 구들과 서법을 가르쳐주신 팔현 김득수 선생과 거창과 함양 그리고 지리산에 살면서 알은 것은 팔현선생도 일본 식민지시절 조선일보에 근무 하면서 6 10만세 사건에 주동자로 몰려 멀리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지내다가 승려가 되신분이다
제주 4 3사건과 여순사건의 토벌을 피해 구례화엄사에서 경남 거창으로 피해살때 내가 팔현선생을 만나 몇년 함께 지내면서 지리산에 살았다
팔현선생께서 독사에 물려 돌아가시면서 나(金明煥(本名) 金曉明(法名) 金聽聲(佛名) 無耘, 憐觀(金錣洙作名)에게 유언으로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한 때 승려생활을 하였고 주지가 나와 친구이니 그 곳으로 가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함께 살거라" 해서 화엄사에서 살다가 잠깐 서울로 가서 살다가 다시 구례화엄사로 내려가면서 기차에서 전주 덕진동에 사는 오주임을 만나 전북 잠종장에서 살다가 그분이 원불교 덕진 교도회장이라 그 당시 양잠사업진흥으로 원불교 삼례 과목장에 8천평 뽕나무재배 시범포에 함께 출장다니면서 자연히 원불교에 출가해서 다시 익산 원불교 영산선학대학 전신인 동산선원에 입학하였다.
그당시 부모의 허락승인서를 받아야 하므로 부산에 사는 어머님을 9년만에 만나 승락서를 받을 때 어머니께서 나의 주소를 적어 두셨다가 아버지의 친구분인 대구에 사는 진보당 당원에게 부탁해서 나를 찿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초봉(初峰 遲耘) 김철수(金錣洙) 선생을 뵙게 되었고 그들도 김철수선생을 초봉동지라고 부르셨다.
나는 아버지를 본적이 없지만 그들이 나를 소개하면서 조선공산당원 김재봉이라고 소개하니 김철수 선생께서 울면서 니가 김재봉 아들 영식이구나하셨다.
그래서 익산시(益山市) 동산동(銅山洞)에 있는 옛 일본 신사터와 건물이이 원불교 교단의 영산선학대학의 전신인 동산선원(東山禪院)인데 그곳에 입선해서 강의가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초봉(初峰 遲耘) 김철수(金錣洙) 선생을 찾아갔었다.
익산에에서는 특별히 아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고, 고향은 경상도라 너무 멀어 그 당시 익산에서 이틀에 다녀오기도 어려웠다.
아침 먹는 대로 바로 이리(裡里 솜리 익산)를 출발 부안으로 가서 다시 평교로 갈아타서 지름길인 산길로 해서 백산 수성리(대수리) 토담집인 초봉(初峰 遲耘) 김철수(金錣洙) 선생을 뵙고 하루 잠자고 귀가하였다..
1968년처음만나 4학년 졸업반인 1971년 내 나이 25세라 세상의 민심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한학 말고도 신학문도 어느 정도 익혀가던 시절이라 초봉(初峰 遲耘) 김철수(金錣洙) 선생께서도 한국 정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