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臨時政府1920~1923

김립 암살사건에 분노한 상해파 계열의 ‘마적단 모험파’들인 최동욱(崔東旭) ・ 최계립(崔溪立) ・ 이호반(李鎬班) ・ 한광우(韓光宇)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초봉(初峰 지운) 김철수(金錣洙)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 나는 상해 임시정부가 해체될 때 내가 모든 돈을 관리했었어 러시아에서 받아온 돈에서 남은 돈을

허헌 씨가 외국 유람 갔다가 오면서 만나 1921년 초에 돈 조금 가져왔어

그래서 한인사회당 중심으로 고려공산당 조직하면서 40만 원울 거의 사용하고 18만 원 남았어

그때는 김구가 샘이나서 김립이를 죽인다고 한 게 김립이는 숨어 당길 땐데 김립에게 내가 3만원을 주면서 마음대로 써라 하고 15만원을 고려공산당(상해파)에서 맡았어

그 때 내가 재무를 맡았으니 40만원 사용한 것은 나의 책임은 아니지만 40만 원에 대한 거취는 내가 훤히 다 알 것 아닌가?

1922년 2월 10일 아침 김립이 김구부하 오면직(吳冕稙) ・ 노종균(盧鍾均)에 의하여 상하이에서 저격당해 즉사할 당시 김하구(金河球) ・ 유진희(兪鎭熙) 등 고려공산당 간부들과 그 자리에 함께 있었어.

김구는 그당시 상해임시정부 경ㅂ무국장이였거든

김립 암살사건에 분노한 상해파 계열의 ‘마적단 모험파’들인 최동욱(崔東旭) ・ 최계립(崔溪立) ・ 이호반(李鎬班) ・ 한광우(韓光宇) 등이 상하이로 와서 김구를 죽이자고 복수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지만 그당시 김립이 죽고 내가 이동휘(李東輝 ) 위원장 아래 제2인자였었어 그래서 내가 극구 말렸어 외국에까지 나와 서로 조선인끼리 죽인다면 일본놈들만 좋아할 것 아니여 하고 하면서 말렸어

그 뒤 실제로 상해 임시정부가 해체될 때 신체호는 북경대학 역사 편찬한다고 돈을 가져가고, 남형우도 가져가고, 김규식이 모스크바 상주 한다고 여비까지 가져가고,

모두 차비하라고 나누어 주고 내가 조선으로 귀국하고는 자금을 좀 얻어볼까해서 친구 장현석씨 집에 갔다가 경무국 고등정탐 최탁에게 잡혀서 1년 6개월 주거제한으로 집에 있었어 제1차 조선공산당(책임비서 김재봉) 때는 참가를 못하고 이 또한 신의주 사건으로 105명이 검거되고

다시 제2차 조선공산당(책임비서 강달영)때에 중앙간부 선전부위원으로 참가했었어!,

다시 제 2차 조선공산당 때 책임비서와 당원들이 6.10만세 사건으로 대부분 잡혀들어가기 전에 내가 제 2차당 책밈비서인 강달영씨로부터 책임비서직을 인계 받고나서

순종이 승하하니 6.10만세운동은 공산당을 살려야 하니깐 공산당 청년당(권오설)에서 하기로 결정하여 결국 권오설도 잡혀 죽고 화요파 계열의 사람들은 대부분 잡혀들어가고 해외로 도망가고 해서

내가 일본 동경 일월회 안광천을 오라해서 통일공산당을 조직하였지

그 후에는 다른 곳에 참여하지 않고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숨어있었던거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