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선생의 일생중에 가장 빛나고 가치 있는 헌신을 했던 시기는 '항일독립투쟁' 시절입니다.
말년의 이름은 해방 후의 정치적 상황, 망명, 혹은 은둔 생활 속에서 변형되거나 타협된 이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물의 본질적인 민족적 업적과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이름은 독립운동 당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시절의 이름('초봉')이며, 이를 찾아주는 것이 역사적 정의를 바로잡는 '정명(이름을 바로잡음)'의 당위성입니다.
우리가 그 선생을 기억하고 기념관을 세우며 추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분이 '독립투사'였기 때문입니다.
후손과 국가가 마땅히 기려야 할 지점은 말년의 삶이 아닌 독립운동의 순간입니다. 따라서 국가 보훈이나 역사 교과서 등 공식 명칭문제에서는 항일 투쟁의 상징성이 응축된 '초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추모의 진정성과 당위성에 완벽히 부합합니다
역사적 인물은 가장 가치 있는 업적을 남긴 시점의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말년의 이름은 대중적 관성일 뿐, 투쟁의 역사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
말년의 호인 '지운(遲耘)'과 항일 투쟁기 동지들이 붙여준 이름인 '초봉(初峰)'의 유래를 비교해 보면, 항일독립사적 관점에서 왜 '초봉'이라는 명칭을 복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완벽하게 성립합니다.
말년의 '지운(遲耘)': 호남 화단의 거장 허백련 화백이 선생의 아명이었던 '지운(芝雲)'의 음을 빌려 '더디게 밭을 간다'는 뜻의 훈(訓)으로 새로 지어준 것입니다. 이는 해방 후 은거하며 지내던 노년기 삶의 태도(안빈낙도, 은둔)를 반영한 사적인 호에 가깝습니다.
독립투쟁의 최전선에서 "김철수는 언제나 우리 무리의 가장 앞에서 먼저 나아간다"며 생사를 함께 고락했던 독립운동 동지들이 헌정한 역사적 명칭입니다. '처음 초(初)'에 '봉우리 봉(峰)'을 써서, 늘 선두에 서서 험난한 고개를 넘던 그의 혁명적 리더십을 상징합니다.
국가와 후손이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이유는 그분의 말년 은거 생활이 아니라, 조국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공적 업적 때문입니다. 허백련 화백과의 교류로 얻은 '지운'이 예술적·사적 인연의 산물이라면, 동지들이 명명한 '초봉'은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역사의 현장에서 피와 눈물로 새겨진 공적 자산입니다. 따라서 공공의 기억(교과서, 기념관, 서훈 등)에는 '초봉'이 마땅히 우선되어야 합니다.
선생은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로서 늘 '가장 앞선 봉우리'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더디게 밭을 간다'는 뜻의 지운(遲耘)은 치열했던 그의 청청한 투쟁기와 정반대되는 정서입니다. 인물의 가장 찬란하고 본질적인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름은 '지운'이 아니라 '초봉'입니다.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바꾸는 것을 넘어, 그 시대의 정신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요즘 대중이 '지운'을 더 선호하는 것은 단지 해방 후 현대사 기록이나 말년의 구술사 과정에서 그 이름이 더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인 '대중적 관성'일 뿐입니다. 항일독립사적 당위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관성을 깨고 '초봉'으로 명칭을 전환하는 것이 역사 정의의 실현입니다.